경찰은 지난 6일 “지난 5년간 쓰레기로 버려지는 병들고 부패한 무 등이 포함된 폐기처리용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폐 우물물로 세척해 만두소를 만든 뒤, 국내 25개 유명만두 및 식자재 유통업소에 만두 및 야채호빵 등의 재료로 납품해온 악덕업자 6명을 입건했다”며 “이 재료로 만든 만두 등은 학교급식 및 군납, 대형할인마트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됐다”고 발표했다.
방송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를 '쓰레기 만두’로 표현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외국의 언론사들도 국내 보도를 인용 “한국만두는 모두 쓰레기”라고 비중있게 다뤘고 특히 일본과 미국은 즉시 한국산 만두 등의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일부 나라에선 한국식품 자체에 대한 비하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그러나 경찰 발표 후 관련업계에선 “경찰 발표가 과장됐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폐 우물물과 제품의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
경찰에 의해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경기도 파주시 소재 으뜸식품.
경찰은 6일 “(이 업체가) 만두소 가공과정에서 수질검사를 거치지 않은 폐 우물물을 사용함으로서 완제품에서 대장균과 세균 등이 다량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와 달리 폐 우물물에 대한 수질검사 결과는 음용수 기준 46개 항목 가운데 ‘탁도’만 1.28도(기준 1.0도)로 기준을 약간 초과하고 대장균, 일반세균 등 나머지는 모두 적합 판정이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생산된 완제품과 원료, 반제품 등에 대한 보건환경연구원의 위생검사 결과도 적합한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3개월 전에 이상 없는 것 알았나?▽
파주시청 위생 담당자는 “우물물의 검사결과는 3월18일에 나왔고 제품 검사 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당시 경찰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두소는 식품으로 가는 중간과정으로, 만두가 되기까지 삶는 등의 여러 가공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장균이나 세균 검사는 의미가 없다”면서 “이 때문에 만두소에 대한 세균검사자체가 위생검사 항목에 들어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말이 옳다면 경찰은 수사발표 3개월 전에 이미 으뜸식품의 물과 제품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셈이다.
이에 대해 단무지 제조업체들은 “경찰이 사건을 확대하기 위해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마치 세균이 득실득실한 것처럼 발표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경찰은 “폐 우물물의 검사 결과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업체 직원으로부터 공장 앞 도랑물을 퍼 올려 탈염과정에 사용했다는 진술이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제품의 경우 파주시청에 의뢰 검사한 것은 두 가지 뿐이고, 우리는 그 곳 말고 다른 기관에도 의뢰했는데 거기서는 세균과 대장균이 나왔다”고 밝혔다.
▽중국산 자투리 극소량 사용했으나 부풀려져(?)▽
경찰은 또 발표에서 “악덕업자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수거해 비위생적으로 세척 가공 후 국산으로 속여 팔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으뜸식품의 경우, “경기도 파주 등에 소재한 단무지 제조업체에서 중국산 단무지 제조 과정 중 발생한 자투리 3190t을 수거 분쇄한 후 만두소 제품을 만들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으뜸식품 관계자는 “우리가 거래하는 업체 가운데 중국산 무를 사용하는 곳은 ㅎ농산 단 한 곳뿐인데, 거래 장부를 확인한 결과 약 4개월간 모두 22.7t의 자투리를 들여왔다”면서 “경찰이 사건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 99년 창사이후 지금까지 우리 공장으로 들어온 전체 국산 통 무와 자투리를 중국산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ㅎ농산의 중국산 무 자투리가 가공 과정에서 국산 무와 혼합됐으나 미처 원산지 표시를 못한 죄는 인정한다”면서 “워낙 소량이고 만두소 제조과정에서 국산과 섞여 미처 표시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발표할 당시 간단하게 범죄사실을 요약해서 쓰다보니까 빠졌는데, 기자들에게는 상세하게 설명했다”면서 “전체 물량 중 중국산은 250t인 것으로 확인됐고 원산지를 미표시한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인체에 정말 유해한가?▽
“문제의 만두는 과연 인체에 해로운 것일까?”
경찰은 발표이후 ‘불량만두’에 대한 인체 유해성 논란이 일자 지난 11일 ‘불량 만두소 유해성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 결과 “만두 완제품에서 대장균과 인체에 유해한 식중독균이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국과수 검사에서 검출된 세균은 일정 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모두 죽기 때문에 냉동만두를 그대로 먹지 않는 한 인체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과수의 ‘불량만두’ 검사에서 검출된 ‘황색포도상구균’은 식중독을 유발하지만 함께 검출된 대장균(엔터로박터 인터메지우스)은 세균 수치를 측정하지 않아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유태우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도 한 언론에서 “무는 균이 생존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며 끓이거나 튀기는 과정에서 없어진다”면서 “발견됐다는 2개의 균 모두 식중독 위험성이 희박하며 불량 만두에 대한 유해성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번 사태는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만두 제조·판매업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심사했던 서울지법 이혜광 판사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시켰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처럼 경찰 수사의 허점이 드러나고 과장 의혹이 제기되면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비전만두 신영문 사장의 죽음, 만두·단무지 관련업계의 잇단 도산, 연간 5000억원대의 만두시장 붕괴, 국민들의 정신적 충격, 국제망신과 수출중단 등등 이번 ‘불량만두’ 사건으로 일어난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미국 상점의 진열장에서 한국 만두와 관련된 제품이 모두 치워졌고, 일본은 만두 수입 금지 조치에 이어 국민들 사이에 한국 식품에 대한 혐오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단무지 공장 ㅇ씨는 “이 달부터 미국에 단무지를 수출키로 계약했는데 방송 보도 후 보내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면서 “지금 창고에 잔뜩 쌓여있는데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대로 버려야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ㅇ사장은 “업체들의 피해가 너무 커 회생이 불가능할 지경”이라면서 “경찰과 방송은 이제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업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ㄱ사장은 “이제 와서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나는 회복하기 힘들다”면서 “60평생 처음으로 나라 싫어 이민을 간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무지 업계와 만두업계는 정부와 방송사 등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 국회와 국무총리실, 감사원 등도 수사 및 언론보도 과정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어 불량만두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도 곧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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