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여섯살인 케일리 한센(Kaley Hansen). 다섯살때 한국서 미국에 입양되었다.
케일리의 양아빠는 변호사. 케일리 이외에도 여동생인 스타사와 쌍둥이 남동생도 한국에서 입양했다. 케일리가 열두살되던 해 생일날 케일리는 왠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 이방인이야. 저들은 날 돈을 주고 사왔을 뿐이야. 나를 사랑하지 않아. 스타사나 남동생들도 불쌍하긴 나와 마찬가지야」.
미국에서는 담배와 마리화나(대마초)를 구하기는 초콜릿보다 쉽다. 술도 마찬가지. 친구들끼리 파티할 때면 이곳 부모들은 아예 집을 비워준다. 밤새 술마시고 춤추기를 몇년. 속이 상한 양엄마는 케일리 앞에서 우는 일도 많았다. 케일리는 그런 양엄마의 행동을 가식으로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양엄마는 이상한 드럼을 가지고 왔다. 한국의 장구라는 악기였다. 방황하는 딸의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양엄마는 딸이 태어난 나라의 민속악기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 케일리는 비로소 양엄마가 진정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양엄마와 장구를 같이 배웠다.
미아(Meeah Benoit)는 열다섯살. 생후 4개월 때 입양되어 한국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이름은 한국어로 「잃어버린 아이」라는 뜻의 미아(迷兒). 한 한국 교포아주머니가 이름에 얽힌 사연을 말해줬다. 친구중에 미아(Mia 또는 Meeah)라는 이름이 왜 많은지 그때서야 이유를 알았다. 미아도 케일리와 마찬가지로 이유없이 반항을 하고, 밤샘 파티를 즐겼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학교선생님인 엄마와도 사이가 좋아졌다. 케일리와 마찬가지로 엄마와 함께 국악을 배우고 나서부터다.
케일리나 미아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입양아들은 시애틀시에만도 1천여명. 이들 대부분은 열두살쯤 되면 방황을 시작한다. 사춘기와 입양아출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결합, 이유없는 반항이 시작되는 것.
이들중 22명의 1318들이 지난 4일 방학기간을 이용, 고국을 방문했다. 샛별전통예술단(단장 최지연)의 일원으로 그동안 배우고 익힌 우리나라 전통에술 솜씨를 뽐내기 위해서다. 단원중에는 입양아출신 7명을 비롯, 한국계 혼혈아 6명이 포함되었다.
케일리는 이번 한국공연 때 양엄마와 함께 장구를 쳤다. 길러준 엄마의 깊은 사랑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케일리나 미아는 입양아들중에서 그래도 행운아에 속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열병에 어찌할 줄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도 아직 많다. 누가 뭐래도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그들이 태어난 조국에 있다. 입양아들은 조국의 관심이 있기를 목마름으로 기다리고 있다.
▼ 「샛별전통예술단」이란… ▼
입양아출신을 비롯한 교포 청소년들로 구성된 샛별전통예술단은 1985년 창단, 올해로 12년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을 기반으로 한 이 예술단의 출발은 참으로 소박하다. 목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최지연단장이 입양아들을 첫대면한 순간 한국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말을 단 한마디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한인교회에서 한글학교를 개설했지만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우리의 민속음악.
본인 자신도 서양음악을 전공해서 국악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같이 배우는 심정으로 학생 12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미국 양부모들의 성원은 대단했다. 이들은 자신들끼리 사물놀이패를 구성, 아이들보다 연습을 더 열심히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자장가 한번 불러주지 못해 아쉬웠는데, 전통악기를 배워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전달해주겠다는 것.
어느덧 학생 수가 늘어 이제는 60여명. 한국출신 입양아뿐만 아니라 일본 등 다른나라 입양아와 교포들까지 참여하여 가야금 단소 대금을 배운다. 그동안 크고 작은 공연만도 5백회를 넘겼다. 입양아들은 최단장을 엄마라고 부른다. 가끔 말썽을 피워 양엄마가 다루기 힘든 입양아들 중 최단장에게 혼나지 않은 아이가 없다. 최단장은 양엄마들이 상상도 못하는 매를 들기도 한다. 한국식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다. 최단장은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국악을 알파벳으로 토를 달아 줄 때가 가장 아쉽다』며 『그래도 조국을 미워하지 않고 배우려는 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전 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