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기소 단계에서의 신중한 적용과 재판 과정에서의 엄격한 해석으로 국보법의 입지가 크게 축소되고 있는 것. 21일 일부 무죄가 선고된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씨 항소심 판결도 국보법의 ‘앙상해진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진보 단체와 보수 진영의 해석은 정반대다. 진보 단체는 국보법의 역사적 수명이 다했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거꾸로 국보법 남용의 위험이 없어진 만큼 그 뼈대만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반박한다.
▽신중한 적용, 엄격한 해석=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보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은 2000년 286명에서 2001년 241명, 2002년 231명, 2003년 165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65명에 그쳤다.
기소자는 더 큰 폭으로 줄었다. 2000년 149명에서 2003년 97명, 올해 상반기에는 34명에 그쳤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한총련 관련자들을 제외하면 올해 일반 국보법 위반 기소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법원의 기준은 더욱 엄격하다. 최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은 9일 국가보안법 제7조 3항(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민족통일애국청년회(민애청)’ 전 회장 한모씨의 상고심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국보법상 ‘이적단체’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정신에 비춰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송씨 사건에서도 서울고법 재판부는 국보법의 엄격한 해석을 강조했다.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
서울지검 관계자는 “이미 검찰 스스로 국보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데도 법원은 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다”며 “국보법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은 정말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상황 인식, 상반된 해석=국보법의 입지가 이처럼 줄어드는 상황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 진영 모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은 다르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국보법의 ‘자연스러운 운명’이므로 법 자체를 소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한 법을 존속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당 일부에서는 송씨 판결을 계기로 국보법 폐지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다른 견해를 나타낸다. 한양대 법대 양건(梁建·헌법학)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국보법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 집행으로 인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컸으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며 “국보법 자체의 고유한 가치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보법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한 송씨 사건의 재판부도 국보법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보법은 여전히 규범성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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