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의의 핵심 쟁점은 이를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은 어떻게 할지 하는 것이다.
▽‘양심 실현’의 자유=‘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인 김수정(金琇晶) 변호사는 “헌법이 보장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는 ‘양심을 외부적으로 실현하고 행동하는 자유’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상 병역의 의무만 내세워 양심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두 가지 의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시환(朴時煥) 변호사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되 대체복무를 통해 형평성의 문제를 해소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나아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이 인권 분야에서 한 차원 높은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현행법상 무리=하지만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행법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다소 무리”라는 견해가 다수인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고법의 한 중견 판사는 “이번 판결이 항소심에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나아가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판결은 법원이 헌재의 몫까지 판단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과 달리 병역의 의무를 헌법에 명문 규정으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병역거부를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대체복무제 역시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논의되고 시행돼야 한다는 것.
▽대체복무제는 어떻게=설혹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판단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대체복무의 방법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많은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양심을 빙자해 병역을 회피하려는 사람을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병역 회피의 목적으로 대체복무를 택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 하지만 대체복무가 말 그대로 대체복무가 돼야지 과도한 징벌이나 보복의 성격을 띠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상당한 설득력과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제 도입론자들은 이스라엘, 대만, 이란이나 과거의 분단 독일 등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제도와 사례를 잘 검토하면 큰 부작용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
양심의 자유 헌법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1998년 ‘양심 형성과 결정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지만, 양심 실현의 자유는 법질서 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이정렬판사 인터뷰▼
“저도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에 대한 판결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李政烈) 판사는 24일 이들 판결에 대해 “법대로 판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건의 잇단 ‘진보적 판결’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이 판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실 나는 진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며 언론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이 판사는 “나도 특수전사령부에서 제대했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배운 대로 그리고 법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 교과서와 사법시험 문제 등에서도 ‘헌법상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라며 “학술적으로는 정답이 명확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지금까지 이단시돼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라면 내면의 목소리는 존중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서는 “법관은 개인에게 의무와 권리를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바람직한 정책 수립은 입법기관이 하는 것으로, 법관의 몫은 아니다”라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이 판사는 “선고에 앞서 아내가 판결 초고를 읽어주면서 격려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헌법재판소가 계류 중인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결정을 내려주겠지만 학계에서도 좋은 논의와 이론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끝으로 “생각보다 너무 큰 파장을 불러왔고 판사 개인이 부각돼 부담스럽지만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 등 잊혀졌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논의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판사는 91년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97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94년부터 특수전사령부에서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기도 한 이 판사는 ‘3차 사법파동’을 이끈 강금실(康錦實) 법무부장관 등 사시 23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진보적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회원.
부인 역시 동료인 서울남부지법 민사55단독 이수영(李洙瑛) 판사로 1남 1녀를 두고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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