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가명·18)양과 송이(가명·18)양은 중학교 동창이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99년 희정양은 송이양 집에 놀러갔다가 송이양의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둘은 송이양의 아버지를 고소하고 함께 집을 나왔다.
미성년자라 취업이 쉽지 않았던 이들은 가출 3개월 만에 속칭 ‘원조교제’를 시작했다.
낮에는 함께 어울리는 남자친구 집 등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PC방에서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은 지 벌써 6년째다. 이젠 죄책감도 없고 집에 돌아갈 마음도 없다고 털어놨다.
매년 10만명의 청소년이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고 있다. 가출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가출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가출의 장기화는 성매매 등 탈선으로 이어지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장기화하는 가출=서울 대학로 인근에는 50명이 넘는 장기 가출 청소년이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서 8년째 청소년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류한열 실장은 “가출이 점점 장기화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쉼터에서 ‘여짱(싸움을 가장 잘 하는 여자)’으로 통하는 수연(가명·21)씨는 쉼터가 생기기 전부터 집을 나와 대학로에서 생활했다.
경찰청과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9∼13세 가출 청소년은 2002년의 경우 전체 가출 청소년 중 20%였으나 지난해에는 25.5%로 늘었다. 그만큼 가출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가출 연령이 낮을수록 가출 횟수가 늘고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6번 이상 가출한 경험이 있는 학생 대부분이 초등학교 때 처음 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출 청소년 중 60%를 차지하는 여학생의 경우 가출한 지 6개월 내에 성매매의 유혹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현장에 어른은 없다=청소년 전문가들은 장기 가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순 가출 청소년들이 장기 가출자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 역할은 현장 활동가의 몫이다. 가출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지하철역이나 유흥가 밀집지역에서 이들을 빨리 찾아내 가정이나 쉼터 등으로 인계하는 역할이 필요한 것.
그러나 국내에 가출 청소년을 위한 현장 활동가는 거의 없다. 전국 40여개 쉼터 대부분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해 9월 문을 연 청소년보호종합지원센터(02-736-1318)도 청와대 인근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다. 유흥가를 중심으로 헤매는 가출 청소년이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영세한 쉼터=쉼터로 청소년들을 인계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규칙적인 쉼터 생활에 이들이 적응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개개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 보호기간이 끝나 쉼터를 나가면 또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부를 원하는 학생은 대학을 보내주고 실업계 고교를 나온 학생은 취업을 알선해주는 등의 장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김향초(金香草) 교수는 “가출 청소년 가운데 쉼터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는 1%도 되지 않는다”며 “가출 청소년을 위한 통합지원센터를 마련하는 등 중장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그룹 홈’ 확산
부모의 경제적 파탄이나 이혼, 학대 등의 이유로 가정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청소년이 함께 모여 사는 민간 복지시설 ‘그룹 홈’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룹 홈은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 생활교사가 아파트 등 일반 주택에서 함께 살며 청소년들이 자립할 때까지 양육하는 중장기 보호시설이다. 단기간 보호하는 쉼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복지시설.
그룹 홈 연합단체인 ‘전국 아동청소년 그룹 홈 협의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전국에 120개의 그룹 홈에서 1000여명의 청소년이 생활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기 시작한 이 시설에는 버려진 어린이와 청소년 등 5∼10명이 어울려 함께 산다.
본인이 원하면 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며 운영비는 종교단체의 지원이나 독지가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취업을 원하는 청소년은 만 20세가 되면 200만∼3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자립하기도 한다. 경기 안산시에서 10곳의 그룹 홈을 운영하고 있는 ‘들꽃 피는 마을’은 공교육을 기피하는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룹 홈 협의회 공동대표인 김광수 목사(47)는 “일시적으로 엇나간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으로 보듬어주면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온다”며 “정부가 그룹 홈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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