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대학자율’ 외면하는 교육부

  • 입력 2004년 9월 20일 18시 43분


고교등급제 적용 의혹과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가 20일부터 6개 사립대에 대해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등 대입제도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전교조는 대학들이 본고사도 시행했는지 여부까지 조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최종안 확정 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교육부는 대입제도 개선안 논의의 중심에서 아예 비켜난 것처럼 보인다. 교육부 내부에서조차 “이 정부는 교육정책에 대한 철학이 없고 전교조에 질질 끌려만 다닌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이 과정에서 불안한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대학 입시에서의 내신 강화에 대한 걱정 때문에 3년간 준비해 온 특목고 진학을 포기하는 중학생이 있는가 하면 “정부의 교육정책이 한두 번 바뀌었느냐”며 과감하게 서울 강남권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학부모도 있다. 정부 교육정책의 방향을 두고 로또복권 맞히듯 해야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교육부의 대응 능력 부재와 무성의가 첫째 원인이다. 교육부는 서울에서 열린 첫 번째 공청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차례 공청회에 관한 토론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대학측의 불만도 일종의 ‘이기주의’로 치부하며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이날 “고교등급제는 실시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안 된다”고 결의했지만 “교육부 요청에 의한 ‘관제(官製) 결의문’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참석자는 “겉으로야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 모든 혼란의 근본 원인은 대학 자율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정책의 모순과 부실한 학생부에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고 대학에 대한 실태조사 등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부의 이런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 대학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교사 학부모 대학,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답답해진다.

이인철 교육생활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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