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올 5월 국회의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한 데 이어 노 대통령이 핵심 정책으로 추진해 온 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최고통치 권력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한 번은 실권 위기에서 벗어났고, 한 번은 정치적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특히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여권으로서는 이들 법안이 국회 통과 후 헌법소원 등에 의해 헌재로 넘어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그 경우 헌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번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헌재가 재판관 9명 중 8 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점.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내려진 데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 등이 보수적 성향의 다수 재판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 현재 추진 중인 여러 법안이 자칫하면 헌재에 의해 또다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권으로서는 헌재의 제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헌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 4명 이상의 재판관에게서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위헌 결정은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금의 헌재 재판관들은 내년 3월에 김영일(金榮一) 재판관이 정년(65세) 퇴임하고 2006년 8, 9월에 무려 5명이 임기 만료로 바뀔 예정이다.
이들 6명 중 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재판관은 2명. 또한 국회 선출 재판관과 대법원장 지명 재판관이 각각 2명이다. 국회 선출 재판관의 경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1명씩 추천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여 여권이 지명할 수 있는 재판관은 모두 3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2006년 9월에 임기가 끝나는 김경일(金京一) 재판관의 후임자는 2006년에 취임하는 새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될 예정이다. 새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이 지명하게 되기 때문에 넓게 보면 여권에 우호적인 재판관을 4명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누가 지명했느냐에 따라 해당 재판관의 판단이 꼭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 대통령과 여권 입장에서는 더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관들을 헌재에 진출시킬 수 있어 ‘헌재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편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대법원 역시 내년에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 등 6명, 2006년에 5명이 퇴임하게 돼 대폭 물갈이가 예상된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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