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천도(遷都)를 계속 추진하려면 헌법개정 절차를 밟아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 국민투표에 회부해야 한다. 그러나 17대 국회 의석 분포나 국민 여론에 비추어 수도 이전은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헌재 결정에 승복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무효에 따른 후속 절차를 신속하고 적법하게 마무리지을 때다.
수도 이전 계획은 처음부터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진 무리수였다. 5년 임기 정권이 600년 수도를 옮기는 대역사(大役事)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음이 헌재 결정을 통해 확인됐다. 국가자원을 수도 이전에 총동원했을 때의 비경제와 비능률에 대한 검토가 미흡한 가운데 충청권 표를 겨냥해 내놓은 대선 공약이었고, 총선에 이어 다음 대선에서도 활용하려던 ‘정치적 카드’의 성격을 부인할 수 있는가. 수도권 비대화도 문제지만 그런 식의 수도 이전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민 다수가 수도 이전에 반대한 것도 ‘정치적 무리수’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 이전 반대론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 내지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강변했다. “구(舊)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지배하는 터를 잡는 지배세력의 변화”라는 발언 또한 왕조시대의 천도의 의미를 말했다고는 하나 수도 이전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청와대비서관은 수도 이전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일을 더 이상 왈가왈부(曰可曰否)할 때는 아니다. 급한 것은 앞으로의 대책이다. 무엇보다 충청권 주민의 실망이 클 것이다. 수도 이전지 발표 이후 그 지역에 몰려들어 부동산을 샀던 사람들의 피해도 작지 않을 것이다. 정략의 소산이자, 원모심려(遠謀深慮) 없는 정부정책이 빚은 결과다.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가 허탈감을 안겨준 정부가 충청권 민심을 달랠 방도를 내놓아야 한다. 이 일에는 한나라당도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4대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원점으로 돌아가 헌법에 위반되는 사항이 없는지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 기업활동의 자유, 사적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대통령의 국가독립 영토보전 의무와 배치되는 조항이 있다면 위헌 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은 국회 다수의석을 무기로 헌법정신이나 헌법제정 목적에 어긋나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로 읽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6개월 시한을 채우지 않고 3개월여 만에 위헌 결정을 한 것은 소모적인 정치공방과 국론 분열을 오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충정(衷情)에서일 것이다. 헌재재판관 9명 중 8명이 위헌 의견을 낸 압도적인 결정이었다. 정부는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헌법적 절차와 국민적 동의를 무시하고 수도 이전을 밀어붙임으로써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수도 이전 논란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물러설 때는 깨끗이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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