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가 15일 발표한 ‘2003 전국가족조사’의 결과 미혼 남녀 절반이 결혼할 계획이 없으며, 20∼30대의 40%가량이 경제문제나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혼하는 편이 낫다고 답하는 등 ‘탈가족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세계 최저수준인 지금의 출산율이 계속될 경우 2100년엔 한국의 인구가 현재의 3분의 1인 1621만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성장동력 고갈' 악순환 직면 ▼
그러나 이런 암울한 전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어떠한가.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정작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적 대응은 뒷북치기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근한 예로 가족구조의 변화로 야기되는 ‘빈곤의 여성화(빈곤인구 중 여성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누더기에 불과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공적 사회안전망의 빈곤 감소효과는 불과 4%대다. 스웨덴의 경우 그 효과는 무려 89%에 이르고, 구미의 선진국 중 사회안전망이 가장 취약하다는 미국도 17%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누더기’라는 이름조차 과분할 지경이다.
출산의 1차 당사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당면 현안에 대한 사회의 대안은 여성의 처지와 조건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당연하다. 여성의 처지에서 보자면 이는 아주 상식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률이 전통시대를 답습하고 있다면 여성에게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출산이 여성에게 전통적 역할로의 복귀를 의미하거나 육아와 직장의 이중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면 누가 여성에게 출산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중부담 상황에선 이혼율의 증가와 출산율의 저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혼으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성장동력의 고갈’이라는 악순환이 강화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은 단순히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선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요즘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들을 들어보면, 여성인력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원인을 도외시한 채 그저 출산율을 배가시키겠다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는 여성인력을 사실상,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하겠다는 의도의 다른 표현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대안은 자명하다.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이는 성장론자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스웨덴의 출산율이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높고 여성의 빈곤율이 가장 낮은 이유는 바로 직장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복지정책의 견실함 덕분이다.
▼노동시장 여성배제로는 안돼 ▼
최근 우리 정부도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부터 자녀를 둘 이상 낳으면 수당을 지급하는 아동수당지급제를 도입하고 세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해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 분양순위를 한 단계 상향조정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시급한 일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배제와 차별을 바로잡고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당면한 가족구조의 변화와 출산율 문제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증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윤홍식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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