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채용비리 남은 의혹들

  • 입력 2005년 1월 24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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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사의 '나눠먹기식 담합'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갖가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채용 과정에서 서류 조작 가능성과 부적격자 외에 비리 연루자가 더 없는지 등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저런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노조 뿐 아니라 일부 회사 직원들이 채용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는 등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부적격자 399명은 어떻게 입사했나=나이, 학력 등을 속인 부적격자들이 어떤 식으로 채용됐는가는 사측과 노조의 '검은 돈 커넥션'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지난해 5~10월 제2공장인 스포티지 생산라인을 증설하면서 4차례 걸쳐 1079명의 생산계약직을 뽑았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은 자격요건에 못 미치는 지원자 399명을 입사시키기 위해 지원자의 학력이나 자격증, 군 복무, 취업 경력 등을 합산한 점수를 올려주는 편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공장 관계자는 "서류전형 결과 합격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총점을 상향조정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항목별 점수를 일일이 고치지 않고 총점만 수정해 감사팀이 조작 사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제3공장 생산직 근로자 박모 씨(37)도 "감사 결과 드러난 부적격자는 대부분 노조가 추천한 사람들"이라면서 "노조측이 면접관에게 추천자 이름과 수험번호 등을 쪽지로 전달하거나 전화로 알려줬다"고 말했다.

신체검사도 의혹투성이다. 기아차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자동차 조립공정에 투입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부적격자가 버젓이 활보하고 다녀 위화감마저 든다'는 익명의 제보가 올랐다.

이와 관련 직원 채용 건강 검진을 맡은 광주 북구 두암동 H 의원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X-RAY 검사 두 가지만 했고 광주공장 인력관리팀 직원들이 병원 6층 사무실에서 따로 신체검사를 해 우리는 신체 이상자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입사 서류 조작 여부는 검찰이 광주공장에서 압수한 인사 관련 서류와 기아차 본사가 제출한 감사 자료에 대한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어 조만간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채용 부적격자'만 비리에 연루됐을까=공장 주변에서는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생산직 근로자 1079명 가운데 부적격자 상당수가 뇌물이나 향응 제공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그렇다면 채용 적격자들의 입사과정에서는 과연 비리가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광주공장 전 현직 인사 담당자들이 '노조에 채용인원의 20~30%를 할당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노조 추천이 아닌 다른 응시자들은 사측과 직접 접촉했을 개연성이 높다.

박홍귀 기아차 노조위원장이 23일 "채용 과정에서 노조 간부는 물론 회사 임원, 정치인 등 회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다 추천자로 봐야 한다"고 말해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검찰도 최근 인사 담당자들에 대한 조사에서 "지난해 채용 때 외부 각계 각층에서 인사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 채용규모가 클 때는 회사와 관계 있는 기관이나 단체, 개인에게도 20%를 배려한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박이가 많고 취업난이 심각한 지역 특성과 지난해 5만여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구직자들이 친인척이나 지인 등을 총동원해 취업을 시도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채용 적격자들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입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측은 왜 '부적격자'를 해고하지 못했나=현대·기아차그룹 감사팀은 지난해 11월 말 광주공장 채용 비리를 감사하면서 노조가 채용을 미끼로 금품을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

이 때문에 당초 '6개월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했던 신입 직원들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유보하고 부적격자를 가려내 퇴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 같은 방침을 철회하고 올해 1월 3일 전원 정규직 발령을 낸 대신 총 책임자인 김기철(金基喆) 공장장과 인사담당자 등 7명을 인사 조치했다.

사측은 이에 대해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논리가 빈약하다. 사규상 뇌물을 주고 입사했거나 업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직원은 제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조의 힘이 세다고 해도 명백한 비리에 대해서는 사규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사측이 노조에 대해 전혀 처벌하지 못한 것은 사측도 채용 비리와 관련한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따라서 채용 부적격자의 정규직 전환과 간부 사원 해임은 사측이 이번 채용 비리 과정에서 고위층으로까지 금품이 흘러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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