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헌법불합치]여성계-유림 반응

  • 입력 2005년 2월 3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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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재판관들 입장3일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결정문을 낭독하기 위해 헌재 대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헌재재판관들 입장
3일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결정문을 낭독하기 위해 헌재 대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헌법재판소가 3일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순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소속 20여 명은 법정 밖으로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성 평등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양성 간의 진정한 공존이 가능한 시대로 나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남윤인순(南尹仁順)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6명의 판사가 불합치 의견을 모아준 데 대해 너무나 감사한다”며 “2000년 6월부터 준비한 소송이 성과를 얻어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이석태(李錫兌) 변호사는 “가족의 근간이 되는 민법이 성적으로 평등해진 것은 한국 법의 질이 한 차원 발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도 “가족법 개정 운동사에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진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상담소 곽배희(郭培姬) 소장은 “헌재의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치관에 혼란을 낳고 가족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반대해 온 유림 측은 헌재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했다.

성균관 가족법개정대책위원회 등은 성명을 내고 “헌재의 반역사적 반민족적 결정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이를 즉각 취소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도 서울을 관습헌법이라며 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헌재가 수도보다 훨씬 오랜 민족사적 전통을 가진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모순”이라며 “설날을 앞둔 국민에게 최악의 선물”이라고 비난했다.

이 단체 간사장인 최병철(崔秉喆) 성균관 교육원장은 “역사적으로 매우 옳지 못한 결정”이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최상구(崔尙九) 사무총장도 “전통문화가 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15일 종로 대규모 투쟁대회 등 반대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호주제 역사속으로▼

호주제란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가장이 재산의 처분이나 가족의 결혼 등에 대해 우월한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다. 민법은 호주와 가족의 개념을 ‘일가(一家)의 계통(系統)을 승계(承繼)한 자’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해 호주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신분관계를 공적 장부에 등록하는 호적은 근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호주와 가족 개념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민적법 개정으로 등장했다. 강력한 호주권을 중심으로 가(家)제도를 구성하도록 한 일본 메이지(明治) 민법의 호주제 개념이 그대로 도입된 것이다.

민법상 호주제는 △가족 간의 종적(縱的) 관계 △남성우월적 호주 승계 순위 등을 강제하고 있어 여성계의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호주 승계 순위는 호주의 아들→손자→미혼인 딸→미혼인 손녀→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돼 있어 딸만 있는 경우 사위가 처가에 입적해 외손자가 외가의 성과 본을 물려받지 않는 한 폐가가 됐다.

이로 인한 남아선호 사상과 여아 낙태는 끊임없이 인권 문제를 야기했고 출생 성비의 불균형까지 초래했다.

또한 아내는 친정을 떠나 시가(媤家)의 일원이 되고 아내는 남편의 보호 아래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관념이 형성돼 가족 내에서 남성의 권위적 행동을 정당화했다.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아내의 의견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입적시키는가 하면 재혼 가족의 자녀들은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받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 반대 목소리는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됐지만 유림의 강경한 반대에 묻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여아 낙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의사 고은광순 씨의 주도로 1998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발족됐고, 2년 뒤 113개 단체가 참여하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로 발전했다.

같은 해 호주제 위헌소송을 준비하기 위한 모임이 결성돼 위헌소송 원고인단을 모집했고 이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이 제기돼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이로써 호주제는 공식 도입 9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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