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시터 7개월 동안 6명 바꿔
한국에서 마음에 딱 드는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의사인 이진석(李震錫·35·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 부부는 10개월 된 딸을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를 지난주 또 바꿨다. 7개월 동안 여섯 번째다.
“생후 4개월째인가 첫 베이비시터 때문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베이비시터가 결핵 환자였던 걸 몰랐어요. 다행히 아이한테 전염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요.”
이 씨 부부의 ‘베이비시터 구하기’ 여정은 가시밭길이었다. 마음에 드는 베이비시터는 우울증 증세가 있거나 기침을 자주 해 건강이 염려스러웠다. 네 번째 베이비시터는 개인 사정으로 보름 만에 스스로 그만뒀고 다섯 번째 베이비시터는 신원이 명확하지 않아 바꿨다.
마음먹고 보육시설을 둘러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공립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일부 영아보육시설은 대기자가 1년 넘게 밀려 있고 민간 영아시설은 마뜩하지 않다. 남은 음식으로 끓인 ‘꿀꿀이죽’을 아이에게 먹이고 아이를 학대한 보육원장 이야기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 마당에 선뜻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는 것.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金勝權) 사회정책연구실장은 “영아시설의 양보다는 부모의 눈높이를 맞춰 줄 만큼 수준이 높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서 “시설을 늘리기보다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영아 보육은 ‘보관’ 아닌 교육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와 스웨덴은 양육의 사회화가 영아 때부터 적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 파리 남쪽 이시레물리노 시 공립탁아소(크레슈) ‘어린이 병정’은 영아반(젖먹이), 중간반(만 1, 2세), 유아반(만 3세까지)으로 나뉘어 있다.
음식은 물론 기저귀, 유아용 턱받이 수건, 장난감 등 모든 용품이 시에서 제공된다. 탁아소는 오전 7시 반 문을 열고 오후 6시 반 닫는다.
파리시내 네케르병원 간호사 셀린 베르트랑 아르디(34) 씨는 4월 초 둘째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중이다. 내년 3월 다시 직장에 나갈 계획인 그는 “병원에 1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탁아소가 있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비시터도 제도화돼 있다. 정부는 베이비시터에게 자격증을 발급해 지위를 높여 준다. 베이비시터가 3개 가정에서 3명 이상의 아이를 돌보면 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에서 정규 근로자와 동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한다. 0∼6세 아이를 가진 저소득층(약 200만 가구)이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비용의 14∼28%를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공보육 체계가 확립된 곳조차 공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기려면 출산 6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나라의 교육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 3세가 되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 즉 보육시설 역할을 유치원이 일정 부분 대신하는 셈이다.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이 잘 시행되고 있는데도 2, 3세 영유아의 48%가 보육시설을 이용한다. 보육시설이 아이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종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는 스페인 마드리드 시도 스웨덴과 같은 방식을 택했다. 마드리드 시 영유아 교육체인인 ‘레드 푸블리카’에 소속된 공립 보육원들은 이름이 아예 ‘영아 학교(escuela infantil)’다.
마드리드 시 남부 엘마드로날 공립 영아학교는 출산휴가 16주를 끝낸 엄마들이 아이를 바로 맡기고 직장에 복귀하도록 생후 4개월부터 아이를 돌봐 준다. 이 학교 교장인 콘셉시온 데 부스토 카스트리요 씨는 “영아 보육이 단순한 ‘보관’ 개념이어서는 안 되며 아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아이와 직장 출퇴근 오히려 불편해”▼
한국은행은 최근 서울 중구 소공동에 어린이집을 짓기 위해 직원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했다. 신청자는 겨우 9명. 은행 측은 어린이집 건립을 포기했다.
도심에 있는 기업이 보육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수요가 없다는 것이 직장보육시설의 근본적 한계다.
이는 교통난이 날로 심해지는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드리드 지방자치주 가족국장인 블랑카 데 라 시에르바 씨는 직장보육시설에 대해 “직장의 위치, 집과의 거리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시 외곽의 병원, 공장은 좋지만 도심의 사무실에서는 효과가 거의 없으므로 정부도 권유하지 않는다”는 것.
공공보육시설이 발달된 프랑스에서도 보육시설은 대개 지역 위주다. 지난해 직장보육시설을 짓는 기업에 시설비용의 60%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반면 정부기관에는 웬만큼 설치돼 있고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여사가 관리하는 탁아소가 있다.
파리 시내 브르토노 병원의 직장 탁아소는 오전 6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운영되지만 부모에게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라도 아이들이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을 피해 달라고 권유한다. 보육원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서문희(徐文姬)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육 환경을 생각하면 지역사회의 수준 높은 보육시설이 가장 이상적”이라면서 “하지만 기업이 탄력근무나 육아휴직에도 인색하기 때문에 직장보육시설 설치 강제규정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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