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私學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는 건가

  • 입력 2004년 10월 15일 18시 05분


열린우리당이 확정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사학(私學)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학은 비리집단이기 때문에 각종 제도적 장치로 비리를 예방하고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학의 새 판을 짜겠다는 이러한 ‘혁명적 발상’은 잘못되고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다.

여당 개정안의 골자는 사립학교 재단이사회에 개방이사제를 도입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화 하는 것이다. 사학 이사회는 학교의 경영주체로 이들의 경영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여당이 이사회의 3분의 1을 개방이사를 통해 외부인에게 준다는 것은 사학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바꾸는 조치는 이 위원회가 사학운영권을 상당 부분 갖게 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더구나 개방이사들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사람들로 채워지므로 이 위원회가 학교운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여당은 이 법을 관철시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자본주의적 가치들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재단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되고 사학의 경영권이 위협받게 됐다. 사학들이 “사학법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반발이다.

여당은 비리를 막아야 한다지만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 사학 비리는 현재도 형법에 의해 처벌되고 있다. 운영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고 비리가 없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현 사학체제에서도 비리는 얼마든지 척결 가능하다. 사학 비리는 극히 일부 사학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부를 문제 삼아 사학 전체의 운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전사학이 갑자기 운영권을 빼앗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당은 명확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학교경영권이 교직원 등에게 넘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해 보아야 한다. 교육계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다. 내부권력 다툼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특히 전교조의 투쟁성은 다수 국민이 우려하는 바다. 사학의 주인이 불분명해질 때 벌어질 수 있는 사태는 내부 다툼과 ‘교육의 정치판 화(化)’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총장직선제로 대학 내부가 갈기갈기 찢기었던 과거 사례에서 입증된 바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집권당이 이런 시각으로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한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 교육은 인재 육성을 위해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각기 건학이념에 따라 여러 색채를 보일 수 있는 사학이야말로 다양성 교육의 구심점이다. 여당 법안이 추구하는 바는 사학을 교육의 공공성을 빌미로 획일화, 단색(單色)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장래가 암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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