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만큼 개인권익도 보호받아야"

  • 입력 2001년 5월 11일 19시 48분


:참석자: 이용훈(李容勳·위원장)전 대법관, 이종왕(李鍾旺·위원) 변호사, 김영석(金永錫·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양창순(楊昌順·위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국내 신문의 인권침해 실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용훈 위원장〓언론이 우선 추구해야할 것은 ‘공익’입니다. 따라서 공직자 등 ‘공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비판해야 하지만 일반인에 대해서는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익명성 보장 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쉽게 보도하는 반면, 공인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경우에는 오히려 익명 처리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보도 태도를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김영석 위원〓여기에는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상이 깔려 있습니다. 개인의 초상권 문제를예로 들자면 최근에는 인터넷에 의한 개인 인권침해가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합니다. 신문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그동안의 잘못된 언론 관행에서 주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정치중심, 권위주의적 사회의식이 지배하던 시기를 넘어 최근 10년여 동안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이른바 ‘공익’ 혹은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개인권익이 상대적으로 무시되던 종래의 경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지요.

▽양창순 위원〓언론의 보도과정에서 사생활이 무절제하게 노출되는 현상을 볼 때마다 ‘어디까지가 공인인가’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공익을 위한 객관적 사실’ 보도를 언론의 본령이라 할 때 그 위배 사례는 많다고 봅니다. 특히 대형사건이 터져나왔을 때 온통 난리를 피우듯 하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또 다른 화제로 이동하면서 그 기사에 관여된 사람들의 인권은 배려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이종왕 위원〓보도로 인한 인권침해는 1차적으로 언론의 지나친 ‘속보경쟁’ 심리에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사실관계가 왜곡돼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면죄부를 주는 명분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물론 국내신문이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과거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객관적 진실’ 보도가 되도록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관련인사의 인권침해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내신문이 보도로 인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얼마큼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이용훈〓모든 기사에 대해 기자실명제를 시행하는 것은 책임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발전입니다. 기자들이 사실관계 확인에 기울이는 노력도 계속 커지고 있고요.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처럼 신문사 스스로 사후조치를 취하는 것도 진일보한 변화이지만 앞으로는 사전심의제 같은 장치를 둬서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하는 추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영석〓역설적으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언론만이 ‘인격권’ 보호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급 학교에서 작성하는 이른바 ‘가정환경조사서’ 같은 것을 보면 사생활과 관계된 학부모의 직업 직위 학력 등 신상명세와 함께 소득수준까지 기록토록 요구하는 일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어요. 개인의 인권보호에 언론이 얼마만큼 부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회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자들은 항상 어떻게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기사 관련인사의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냐를 놓고 갈등을 겪습니다. 충돌하는 두 목표의 조화점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요.

▽이용훈〓알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먼저 생겨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일천한 것이지요. 그리고 알 권리의 실체는 아직 추상적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무한정인데 ‘모든 것을 (재미로) 알고 싶다’가 ‘알 권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공인의 행동은 국민에게 노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공인이라 함은 우선 자기를 알리고 싶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국민으로부터 일정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크게 정의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적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 활동이 어느 순간 공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시공간에서는 공인의 성격이 강해집니다.

▽양창순〓구미로부터 전수된 알권리의 개념을 이제 우리가 다듬어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그 세세한 사생활까지 다 알아야 한다는 합당한 근거가 있느냐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기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끝없이 보도가 나오는데,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알 권리’로 혼동해 마구 파헤치듯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이종왕〓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대중에 노출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법률적으로 공인에 포함됩니다. 검증 받아야 할 책임이 생기는 것이지요. 마치 대중의 우상이 자신의 기호식품 등 사생활이 거의 다 공개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용훈〓기사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기자들에게 인권침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항상 완벽한 기사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러다 보면 기자가 위축돼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없고 결과적으로 독자의 알권리가 침해당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종왕〓잘못된 보도에 대해 언론이 솔직 과감하게 인정하고 시정해 나가려는 자세가 절실해 보입니다. 이는 긴 시각으로 보면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첩경입니다. 잘못된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에 성의를 보일수록 독자들은 ‘그 밖의 모든 기사는 정확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국내언론의 인권침해 사례와 관련한 법원의 판결 추세는 어떤지요.

▽김영석〓관련 판례가 최근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전두환정권 시절 아주 적었다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현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권의 직접적 언론 탄압 속에서 개인 인권침해 방지보다는 언론의 자유라고 하는 사회적 책임에 더 무게가 실렸던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종왕〓법원은 점차 언론의 민사책임을 강하게 물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배상액수도 갈수록 커지고 있고요. 그러나 언론 보도를 위축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인에 대한 사실관계 보도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일반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김영석〓미국의 경우 언론의 인권침해에 대한 손배소송액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도 분명한 판결 원칙은, 크게 잘못된 사례에 한해 엄격히 대처해 상징적인 효과를 거두되 기본적으로는 언론자유의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위원장께서 앞으로 독자인권위원회의 운영방향에 대해….

▽이용훈〓동아일보사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동아일보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보도 대상이 되는 국민의 인권은 침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독자인권위원회를 구성한 만큼 21세기 언론문화 선도에 초석을 놓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리〓박윤석기자>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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