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서울마리나는 ‘천혜의 입지’를 자랑한다. 수도 한가운데 요트장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이 마리나는 2011년 4월 영업을 시작한 이후 2년째 적자를 내고 있다.
운영한 지 2년 만에 90척을 수용하는 계류시설이 꽉 찼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확장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마리나의 필수 시설인 정비 및 주유 시설은 물론이고 계류시설 확장도 서울시가 ‘하천 개발’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 이승재 서울마리나 대표는 “국내 최고의 시설을 지어놓고도 각종 규제 때문에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셈”이라고 푸념했다.
해외의 마리나들은 요트를 정박시키는 기능 외에 수리, 임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의 마리나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정부가 지정한 마리나를 운영해도 하천법, 항만법 등 여러 관련 법의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리나 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마리나법)’이 일부 개정돼 마리나 안에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게 됐지만 허가된 면적이 턱없이 좁아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익구조도 비정상적이다. 요트 관련 수입과 부대시설(레스토랑, 컨벤션 홀 등) 수입이 5 대 5를 이루는 게 마리나의 이상적 수익구조. 하지만 지금은 부대시설을 통해 얻는 수익이 전체의 90%나 된다. 서울마리나의 경우 겨울철에는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 클럽하우스 3층 레스토랑의 운영이 중단됐고 처음에 60명이던 직원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이 대표는 “해양레포츠에 대한 인식이 낮아 사업 초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지방자치단체, 관련 정부 부처의 간섭과 규제가 너무 심하다”면서 “외국인 관광객 등이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사업을 확장하고 직원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양레포츠 관련 전문가들은 “관련 규제를 대폭 푼다면 서울마리나 규모(100척 수용)의 마리나 하나가 만들어질 때마다 괜찮은 일자리 1000여 개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한다.
○ 요트 10배 늘어나면 일자리 45만 개 생겨
요트를 기반으로 한 해양스포츠는 서비스업, 제조업 등의 관련 산업과 연계될 경우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는 고(高)부가가치 산업이다.
국토해양부는 2011년 말 ‘마리나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하면서 7000대 수준인 국내 요트(보트 포함) 수가 2020년에 7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전망대로 마리나 산업이 발전할 경우 총 28조 원의 부가가치와 45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한국마리나산업협회는 예상하고 있다.
마리나가 세워지면 우선 요트 수리 인력이 필요하다. 국가자격증을 갖춘 교육 인력도 충원돼야 한다. 서울마리나도 요트 국가대표 출신 강사, 영국 등 해외 요트 아카데미를 수료한 강사 등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 수는 현재 4명에 그친다.
해양스포츠 활성화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세계 요트 제조시장 규모는 약 47조 원으로 대형선박 위주인 조선업 세계시장 규모(50조 원)에 버금간다. 한국이 조선업계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요트 제조 기술은 일본과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뒤처져 있다. 요트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주문 생산이 많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고유 영역이다.
국내 1위 요트 전문 제조업체인 현대요트의 도순기 대표는 “요트는 집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 선체(船體) 제조업 외에 내부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관련 산업도 같이 성장한다”며 “한국은 배 만드는 기술 노하우가 충분히 축적돼 있어 국내 수요만 확보된다면 선진기술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마리나법 제정했지만 무용지물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해양레포츠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마리나 개발과 요트 저변 확대에 노력해 왔다. 한국에서도 2000년 617척이던 요트·보트 수(등록 기준)가 2010년에 6967척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정부는 2009년 마리나법을 제정해 해양스포츠 활성화에 의지를 보였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미진한 편이다.
정부는 2010년 내놓은 ‘제1차 마리나 기본계획’에서 2019년까지 전국에 마리나 43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 운영 중인 곳은 18개, 그중에서도 기본계획 발표 이후에 조성된 건 5개뿐이다.
민간 투자로 이뤄지는 마리나 건설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개발비 때문이다. 마리나 계류장과 클럽하우스 등 부대시설을 건설하려면 300억 원 이상이 든다. 공유수면을 이용하는 대가로 지자체에 매년 수억 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마리나 투자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계류시설을 지을 때 정부가 정책자금을 투입하는 데 비해 한국은 공유수면 사용료를 일부 깎아주는 것 외에 거의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데도 회원권 분양 등 임대사업을 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골프장, 스키장은 체육시설법에 근거해 시설을 짓기 전에 회원권을 분양해 투자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마리나법에는 회원권 분양, 요트 임대에 관한 규정이 없어 회원제 방식의 운영이 불가능하다.
서울마리나도 사업 초기 회원권을 통해 투자 비용 일부를 조달하려고 했지만 서울시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결국 총 340억 원의 투자 비용을 채우기 위해 은행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205억 원을 빌려 이자만 매년 14억 원이 나간다.
마리나법은 제도적 허점이 많다 보니 다른 법과 충돌할 경우 속수무책이다. 대부분의 마리나는 마리나 소유의 요트와 요트 아카데미를 갖추고 있는데도 요트 조종면허 시험을 대행할 수 없다. 해당 지자체와 해양경찰청이 서로 자신들의 내부 규정을 내세우며 조종면허 허가를 미루고 있어서다. 유흥주 인하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한국의 마리나법은 선진국의 1950년대 수준”이라며 “계류시설 외에 다양한 서비스 산업과 연계돼야 종합레저시설로서 부가가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오운열 해양정책과장은 “처음 마리나법을 만들 때에는 관련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며 “기존 법에 서비스 관련 근거를 포함시키는 법 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마리나(Marina) ::
‘해변의 산책길’이라는 라틴어 ‘Marinate’에서 유래한 단어. 바다나 하천에 요트(보트 포함)를 정박시킬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 요트의 보관 임대 수리뿐 아니라 음식,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레저시설. ▼ 국내 찾는 크루즈선 3년새 3배로 늘었는데 선상카지노 규제 묶여 한국국적 1척도 없어 ▼
‘바다 위의 특급호텔’로 불리는크루즈선은 고급 서비스 일자리 창출의 보고다. 최근 크루즈선을 타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 국적 크루즈선은 한 대도 운항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외국 국적의 크루즈선으로 한국에 들어온 관광객은 2009년 7만6688명에서 2012년 27만5156명으로 3.6배로 증가했다.
국내에서 국제 운항 허가를 받은 크루즈선은 지난해 2월 취항한 ‘클럽 하모니호’가 유일했지만 올해 1월 수익성 악화로 사실상 운항을 중단했다.
한국 국적 크루즈선 운항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양질의 일자리도 공중으로 사라졌다. 중간 크기 크루즈선인 클럽 하모니가 운항을 중단하면서 승무원 36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보다 큰 7만5000t급 크루즈선 1척이 취항하면 약 75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게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분석이다.
국토부는 한국 크루즈선이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선상 카지노 문제를 꼽는다. 한국을 경유하는 대부분의 외국 크루즈선(일본 제외)은 공해상은 물론이고 한국 영해에서도 카지노 영업을 한다. 선상 카지노 허용 여부는 배가 지나는 나라가 아닌 배가 등록된 나라의 정책을 따른다. 한국 정부도 한국 국적 크루즈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외국인에 대해 선상 카지노를 허용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허가를 내줘야 할 문화체육관광부가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모집 공고를 미루면서 아직까지 카지노 허가를 받은 크루즈선 업체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국 크루즈선이라도 한국을 최대한 많이 경유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크루즈선 관광객 1명이 한국에 들어와 쇼핑에 쓰는 비용은 하루 평균 512달러(약 55만8000원)였다. 특히 크루즈선 관광객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인의 경우 998달러를 쓴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단체여행 기준) 평균 쇼핑 지출액(106달러)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편을 더 늘리기 힘든 상황에서 대량 수송이 가능한 크루즈선 여행 활성화는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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