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릴레이 인터뷰/슬픔 이길 희망을 찾아]
<1>세월호 참사 이후 설교 중단한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 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기도를 했으리라. 그것은 종교에 관계없이 하나 된 바람이었다.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무너졌다. 종교 지도자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힘들지만, 그래도 눈물로 피워야 하는 희망에 대한 제안을 들어본다. 》
14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안산동산교회 앞에는 하나님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안산의 다른 곳처럼 교회도 무거운 분위기였다.
1979년 이 교회를 개척한 뒤 안산 동산고를 설립한 김인중 담임 목사(66)는 이날 찾아간 기자에게 대뜸 “제가 무슨 말을 하겠냐.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다”며 손사래를 쳤다. “35년 목회 인생 중 이렇게 어려운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저는 무슨 말도 할 수 없는 목사가 됐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힘이 돼 줄 수 없어 정말 슬픕니다.”
김 목사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설교를 중단했다. 설교할 자격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짧지 않은 침묵과 망설임 속에 그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 어떻게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까.
“그날 오전 뉴스를 못 보고 나중에 TV 화면을 봤습니다. 배가 떠 있고, 사람들이 구명조끼 입고, 헬기도 떠 있더군요. 그럼 다 구조되겠네 하며 안심했죠.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배가 점점 가라앉아요. 빨리 가라앉지 않도록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며칠 사이 배가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당시 교회는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애들이 배에 들어있는데 구조됐다는 소식이 없으니 다들 교회로 모였죠. 사고 다음 날 저녁 평소 400∼500명보다 훨씬 많은 1300명이 모여 구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단원고 학생 8명이 이 교회에 다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 그중 한 명만 살아왔습니다.”
―그 학생들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하고 예쁘고 귀한 꽃이었습니다. 하영이는 성가대 가수로 교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우선, 먼저 시신을 찾은 네 명의 장례 예배를 치렀습니다. 시신만 찾아도 고마워하는 부모님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기도만 했습니다. 학생 7명의 시신을 모두 찾았는데, 아직도 힘겹게 기다리고 있는 분들께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
“사실 누군가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가만히 옆에 있으면서 함께 울어주어야 합니다. 제 경험상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나 그분들이 잘 아는 목사, 스님이 함께 있어주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선의에서 도우려는 분들이 많지만 유족 처지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습니다.”
―목숨을 끊으려는 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가 있으면 이 고통을 이겨내기가 좀 낫습니다. 문제는 같이 있으면서 손잡고 함께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경우입니다. 아까 말한 하영이 어머니는 교회에서 ‘우리 딸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수백 명이 함께 기도하고 울어줘 고마워요. 딸은 천국에서 만날 거예요. 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으니 남은 몫은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 신자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설교를 중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동네 목사이고, 이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로 살아왔는데 무슨 낯으로 설교하겠습니까. 사고를 겪고 보니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김 목사는 눈시울을 붉히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학생들에게 안내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분위기가 이상하면 쫓아나가 ‘정말 그대로 있어도 됩니까’ 하며 반드시 묻고 따지라고 했어야 하는데….”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유족의 바람처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뒤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빨리 빨리’라는 속도를 최우선시했다면 이제는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교육의 문제도 있습니까.
“학교와 교회, 사회, 국가 모두 제대로 된 가치 교육에 실패했어요. 돈과 성공이 아니라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핵심이 빠져 있었어요. 그동안 우리들은 내 새끼, 내 회사, 내 동네만 잘되라고 정신없이 뛴 겁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이 잘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은 배우지 못했어요.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선원 모두 남이 아닌 나만 생각한 거죠.”
―미국은 자국민이 어디에 있든지 구출한다고 합니다.
“자국민의 시신은 물론이고 50년이 지나면 뼈라도 찾아 유족에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게 국가가 국민을 위해 책임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국민들은 나는 죽어도 국가가 나와 가족을 책임지니, 어디서든 조국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우리 사회에는 가정과 종교단체, 지역, 단체, 국가 등 여러 단위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목사이기에 제가 꼽는 최고의 지도자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죄가 전혀 없는데도 죄투성이 인간을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는 책임지고, 백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죠. 권력과 명예만 누리는 게 아니라 죄가 없는데도 대신 죽는 분입니다. 지도자들은 또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해경 책임자, 관제센터 담당자, 화물 검사를 맡은 책임자도 ‘현장의 지도자’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지도자상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종교입니다만 20여 년 전 고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란 말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내 탓이오’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내 탓, 내 책임을 알았으면 그 문제를 고치기 위해 나부터 십자가를 지고 외쳐야 합니다.”
―국민도 책임을 져야 합니까.
“책임의 51%가 지도자들 몫이라면 49%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지도자들을 선택한 것도 바로 우리죠. 지도자들은 명예와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변명해서는 안 되고, 국민들은 남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의 책임도 인정해야 합니다.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머리 눈 코 입, 몸 전체가 그런 거지, 어떻게 손만 잘못했겠어요.”
―사회 전반에 세상이 싫다는 식의 염세주의 기운이 강해지고, 대통령도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불행을 두고 정치권에서 이익을 위해 꼼수 부리면 안 돼요. 서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배워야죠. 자신들이 선택한 대통령과 마누라, 자주 바꾸면 행복합니까. 영향력이 큰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들의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일단 뽑았으면 제대로 책임질 수 있도록,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사회를 위한 기도 겸 조언을 부탁합니다.
“저는 부끄럽고 죄송한 사람입니다. 한국교회의 모습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한마디한다면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건강해야 몸 전체가 건강해집니다. 국회에서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 여러 단체에서 허가 내주고 검사하는 사람들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모든 것이 나와 관계없는 남을 위한 게 아닙니다. 바로 나와 내 아들, 내 부모가 언젠가 탈 배 아닙니까.”
< 김인중 목사는 >
△1948년 경기 시흥 출생 △경복고, 서울대 사범대 불어교육과, 총신대 대학원 졸업 △1979년 반월동산교회 개척
△1992년 안산동산교회로 교회명 변경 △1995년 안산동산고 개교 △2012년 (사)굿파트너스 창립 △현재 안산동산교회
담임목사, 안산동산고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동산복지재단이사장,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대표회장 △ 주요 저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네 기둥’ ‘아버지의 마음으로’ ‘안산동산고 이야기’ ‘백절불굴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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