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선 오브 갓(Son of God)’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중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품에 안은 성모님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더군요. 진도 팽목항, 그곳에 계신 어머니들이 바로 성모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21일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에서 만난 조환길 대주교(60)는 먼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조 대주교는 “그분들 모두의 말씀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하루빨리 한 사람의 실종자도 빠짐없이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 그래야 그분들뿐 아니라 국민들의 상처도 함께 아물 수 있다”고 했다.
1981년 사제품을 받은 조 대주교는 교구 사무처장, 총대리 주교를 거쳐 2010년 대구대교구장에 착좌했다. 4년간 매일신문사 사장을 지냈고 2007년부터 현재까지 천주교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구 움직임은 어땠습니까.
“참사 이후 교구 차원은 물론 각 성당에서 추모하고 있습니다. 11일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도 노란 리본에 ‘우리 모두 회개하여 바른 세상을 만들게 하소서’라고 썼습니다. 뭐가 잘못 됐는지 근본적인 책임을 깨닫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실천하자는 의미입니다.”
―종교 지도자의 한 분으로 더 큰 책임을 느낄 것 같습니다.
“종교인으로 어떻게 뚜렷하게 드릴 말씀도 없고, 해결할 방법도 없어 답답합니다. 종교인이 앞장서 바르게 못 살아 세상이 그런가 하는 자책도 했습니다. 신앙생활과 바르게 사는 삶이 얼마나 일치했느냐는 고민도 있습니다. 신앙과 삶의 괴리죠.”
―혹 교구에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분이 있습니까.
“직접 관련된 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광주든, 대구든 우리 전체의 문제죠. 11일자 교계 신문에서 이번에 희생당한 학생과 같은 성당에 다니던 학생의 추도사를 접했습니다. 그 학생이 ‘같이 성당 다니며 나중에 신부 되자고 했는데 너는 먼저 갔구나. 네가 못 이룬 꿈을 내가 두 배로 이루겠다’고 다짐한 내용이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담화는 어떻게 보십니까.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는 진정성과 제대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는 있었습니다.”
―대구라는 지역 정서 때문에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것 아닙니까.
“옹호, 그런 것 아닙니다. 그분 두둔하려는 게 아니라 그분이 책임지고 근본 문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근본적 문제일까요.
“우선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큰 문제입니다. 도덕성 상실과 황금만능주의도 사건의 배경에 있습니다. 동아일보 칼럼에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안전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칼럼이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경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밀어왔고, 심지어 교육조차도 경쟁과 1등주의에 매몰돼 있었습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고쳐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체의 바탕색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신학적 관점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양들을 두고 도망치는 사람이 바로 도둑이고 강도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방조한 우리 모두 도둑, 강도가 됐는지 모릅니다. 신앙의 목자뿐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교사와 관리, 나아가 대통령까지 모두 지켜야 하는 양들이 있는 목자입니다.”
―국민 모두 집단적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희생자, 특히 아까운 학생들을 어이없이 잃은 걸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는 슬픔이요, 상처죠. 그래도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보고 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버려선 안 됩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언급하기는 아직 이를까요.
“여러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 바닷속에 실종자들이 있으니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조해야죠. 그러면서도 우리가 더 힘내고 새롭게 살자는 말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단체, 종교계 모두 합심해 노력해야죠. 정부 개조, 이런 말씀도 있는데 국민 전체가 의식을 고쳐야 합니다. 신앙 따로, 교육 따로, 삶 따로 가는 게 아니라 함께 해야죠. 청해진해운의 재정에 관한 보도를 봤는데 교육훈련비보다 접대비가 몇 배 많더군요. 훈련은 제대로 안 받고, 도대체 누구에게 접대합니까?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대통령 물러나고, 내각 퇴진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런 얘기 자주 합니다. 물러나면 또 다른 사람 뽑아야죠. 그런데 이렇게 반복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러나는 것은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게 아닙니다. 뭔가 갖춰놓고 제대로 책임지고 그때 물러나야죠. 이번 참사, 이 엄청난 일을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됩니다.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조 대주교는 세월호 참사로 설교를 중단한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의 근황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개신교에서 설교는 목사의 상징인데 정말 큰 고통 속에 계신 것 같다”며 “교회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김 목사님이 하루빨리 다시 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 대주교는 선배인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전화를 했다고 했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교통신호를 철저하게 지키고 규칙을 따르면 좀 막힌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규정과 법률을 지켜도 손해 보지 않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참사를 남의 집 불 보듯 해서는 안 되고, 모두 아파한 만큼 자기 생활로 연결해야 합니다. 미욱해 보이지만 황소걸음으로 가는 용기가 이 사회를 지키고 바르게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깊은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교황님의 한국 방문이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겁니다. 교황님, 신앙 여부에 관계없이 사랑받는 아이콘이 되셨어요. 그 이유는 말씀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대단한 용기입니다.”
―염수정 추기경의 북한 방문도 화제였습니다.
“평양교구장 서리도 맡고 있는 추기경님이 오래전부터 방북을 계획한 걸로 아는데 방문이 성사돼 잘됐습니다.”
―매일신문 사장도 지내셨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언론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나옵니다.
“재난보도에서는 언론이 지나친 경쟁보다는 사고의 핵심을 짚고, 유가족을 보호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본연의 자세를 지켜야죠. 성경에 ‘나는 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목자는 양이 드나드는 문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그 문을 통해 양들은 풀밭으로 나가고 저녁에는 맘 놓고 쉬는 거죠. 목자는 그 양들을 밤새 지켜야죠. 언론은 바로 그 문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위한 기도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세월호 참사가 마지막 사고가 되어야 한다는 게 유가족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정부도 구조와 치유,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리 모두 함께 도와야 합니다.”
▼조환길 대주교는▼
△1954년 경북 달성 출생
△1981년 대건신학대 대학원(현 광주가톨릭대 대학원)
졸업
△1981년 사제 수품 △1999∼2004년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2004∼2007년 매일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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