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患 이겨낸 대한민국, 속병 앓는 중… 적당히 넘어가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종교인 릴레이 인터뷰/슬픔 이길 희망을 찾아]
<4·끝>원불교 수장 경산 장응철 종법사

28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만난 경산 장응철 종법사. 그는 “밖에서 오는 병들에 비해 안 보이는 병들은 훨씬 치료하기 어렵다”며 “자신을 낮춘 지도자들과 국민이 마음을 열고 대화해 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불교 제공
28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만난 경산 장응철 종법사. 그는 “밖에서 오는 병들에 비해 안 보이는 병들은 훨씬 치료하기 어렵다”며 “자신을 낮춘 지도자들과 국민이 마음을 열고 대화해 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불교 제공
《 “선진국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외부에서 닥친 어려움에 대해 잘 대처해 왔지만 최근 내부에서 발생한 심각한 ‘속병’을 앓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진단해 잘 치료해야 하고, 적당하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토론하고 지혜를 모으는 대담론의 장을 열어야 합니다.” 28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만난 경산 장응철 종법사(宗法師·74)는 평소처럼 넉넉한 모습이었지만 이날 발생한 전남 장성 요양병원 참사를 언급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종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해당하는 원불교 최고 어른이다. 》

―세월호 참사에 이어 요양병원 화재로 많은 어르신들이 희생됐습니다.

“대한민국은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6·25전쟁의 잿더미에서도 일어섰습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위기도 잘 극복했습니다. 외부에서 시작된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금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도약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속병은 정말 심각합니다.”

―속병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과거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해서 글공부와 관리로서의 입신양명, 지조 등 선비적 가치가 강조됐습니다. 산업화 이후 이것이 경제 제일주의로 바뀌었죠. 즉, 관료 중심의 국가 틀에 경제 우선의 사상이 결합됐는데, 이게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부정적 결과도 함께 낳고 있습니다. 정책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유착 내지 부도덕한 관계가 심각해진 거죠. 여기에 우리가 고속성장하면서도 섬세하게 챙겨야 하는 부분들이 빠져 허약한 기초가 한순간에 드러나게 된 듯합니다.”

―대담론의 장을 말씀하셨는데요.

“이번 참사들은 가장 뼈아픈 상처이자 위기이지만, 어쩌면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드러난 문제를 대충 넘겨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론 주도층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참여해 함께 가정과 회사, 종교, 국가의 속병을 끄집어내고 그 치료책을 찾아야 합니다. 교육도 경제와 효율 위주로 가다 보니 인성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간을,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총체적으로 부족합니다.”

―유족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지금도 자식의 육신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이 40일 이상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직접 무엇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구조 작업이 어찌 보면 느리고 태만하게 느껴질 겁니다. 애간장을 태우는 아픔을 쉽게 이길 수는 없지만 슬픔 속에 계속 남아 있으면 본인도 불행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루빨리 시신을 찾아 마음을 다잡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국가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보는 미래는 국가 주도형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능력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그 신바람을 잘 구현하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해줄 리더들에게 먼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어려운 시기,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도 많습니다.

“과거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리더들은 가난하면서도 올곧은 한사(寒士)였죠. 이들이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며 국가와 공동체의 정신을 지탱했어요. 하지만 요즘 그렇게 살면 ‘바보’라고 할 겁니다. 물론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정신과 물질을 겸비하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을 그 대안으로 봅니다. 정신과 육체, 도덕과 경제가 잘 어우러진 상태를 최선으로 보는 거죠. 모든 것은 원융(圓融·각각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원만하게 하나로 융합)해야 하지만, 그중 도덕이 경제를, 정신이 물질을 앞서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그 역할 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남북 대치와 경제적 어려움이 전통적으로 큰 문제였죠. 국민 다수는 그분이 갖고 있는 의식과 캐릭터를 선택한 겁니다. 그 캐릭터에서 부족한 것, 나머지는 여러 곳에서 보충해야죠.”

―보충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것도 공백을 메우는 거죠. 비판이 없으면 한쪽 일변도가 됩니다. 그럼 국가의 불행입니다. 주인정신과 공동체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게 순리죠. 어떤 대통령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비판을 수용하고 협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열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제가 충분한 정보는 없습니다. 국민들은 현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오랜 시간 그분 모습을 지켜봤고 경험했습니다. 그걸 알고서 선택한 만큼 잘되도록 도와야죠. 딱 들어맞지는 않을 수 있지만, 한 과일나무에서 두 가지 과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목(一木)에 불구이종과(不求二種果)요, 일인(一人)에 불구이종재(不求二種才)라 했죠. 그분 경험과 스타일을 알고도 선택했으니 (국민들이) 동업자인 셈이죠. 둘이 알고 함께 살기로 했으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워 가야죠.”

경산 종법사는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있어서인지 국가와 리더, 인재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답변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인터뷰가 끝난 뒤 몇 시간 지나 안대희 후보자의 사퇴 발표가 나왔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속담처럼 윗물이 맑아야 합니다. 사람을 쓸 때 능력이냐 도덕성이냐의 논란이 있습니다. 우선은 도덕성이 중요하고 부족한 능력은 다른 이를 통해 보충해도 된다고 봅니다. 도덕성에 의심이 생기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반기를 들게 됩니다. 진나라의 병법가 황석공의 ‘소서(素書)’에 ‘임재사능(任才使能)’이란 말이 있습니다. 재목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일을 다 맡기고, 능한 사람은 부리라는 겁니다. 모든 일을 맡길 사람과 부릴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지도자의 지혜입니다.”

―여러 사고 이후 국민들 사이에 무기력증과 무관심한 반응도 나옵니다.

“우리 모두 좀 쉬어야죠. 잠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너무 우리가 앞으로만 나아갔어요. 왜 내가 이렇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해야죠. 좀 쉬면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종교의 역할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있습니다.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많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안정화하도록 돕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면서 자비행을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인데 말이죠. 그런데 종교가 각기 교세 확장하는 데 우선이고, 내부의 문제점도 많이 노출됐죠. 종교인들이 세상의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원리주의나 근본주의적 폐쇄성이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걱정하도록 만듭니다.”

―국민을 위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현대는 모친 상실 시대, 어머니가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들조차도 사회적 배려의 부족으로 남성화하고 성과주의에 빠져 있어요. 여성으로 상징되는 부드러움과 치밀함이 부족합니다. 사회 전체가 여성성을 회복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종법사께 어머니는 어떤 존재입니까.

“저는 아버님이 일찍 작고하셨는데 어머니께서 늘 ‘넌 대인이 될 사람이니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죠. 눌은밥도 주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출가할 때 절하면서 너는 부처님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말들이 저를 키워주는 중요한 단어들이 됐습니다. 50, 60년 전 일인데도 부엌에 갔을 때 어머니의 그 얼굴이 어제처럼 떠올라요.”

▼경산 장응철 종법사는… ▼

△1940년 전남 신안 출생

△1960년 원불교 출가

△1968년 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

△1975년 독신으로 사는 정남(貞男) 서원

△1988년 청주교구장

△1995년 서울교구장

△2000년 교정원장

△2003년 중도훈련원장

△2006년∼현재 종법사

익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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