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 을
<2> 절망의 순간 ‘희망의 빛’ 만난 박정화씨
“4개월 전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몸서리쳐질 정도예요.”
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솔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박정화(가명·51·여) 씨는 지난 얘기를 하면서 한숨을 내쉰 뒤 수차례 허공을 응시했다. 박 씨 가족에게 시련이 닥쳐온 건 2005년이었다. 남편(54)은 당시 서울 동대문에서 직원 6명을 둔 중국 완구 수입업체와 종이쇼핑백 공장을 제법 크게 운영했다. 그러나 대규모 할인매장 등이 들어서면서 그해 12월 부도가 났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담보로 잡혀 있던 아파트도 내놔야 했다. 박 씨 앞으로 받았던 대출금 8000만 원은 한 푼도 갚지 못했고 낯선 채권자들이 떼로 몰려와 닦달했다. 심지어 흉기로 위협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급하게 이사했던 집(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0만 원)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남편은 혼자 공장을 운영하며 빚을 조금씩 갚아나갔지만 생활비는 박 씨가 책임져야 했다. 박 씨는 단칸방에서 아이들 학비와 월세(30만 원)를 벌기 위해 파출부, 식당일, 대형 할인마트 매장 판매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던 올해 6월 말이었다. 평소처럼 아이들을 깨우려고 오전 6시 30분쯤 알람소리에 일어났는데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선배에게 도움 받아. 아이들하고 잘살아. 먼저 갈게 미안해….’ 서울 근교에서 혼자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남편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남편은 공장에서 목을 매 자살하려다 실패하자 손목을 두 차례나 그었고 출혈이 심해 혼수상태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고 나중에 의식이 돌아와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남편을 살려낸 기쁨도 잠시였다. 박 씨는 병원 수발을 들기 위해 일을 그만뒀고 대학 졸업반이던 큰딸(22)도 휴학을 해야 했다. 20여 일 후 남편이 퇴원할 때가 됐지만 자살 기도는 보험 적용이 안돼 병원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박 씨는 “남편은 살렸지만 월세가 7개월이나 밀렸고 돈 한 푼 가진 게 없으니 차라리 내가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호소했다. 다행히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고 사회복지모금공동회와 연결돼 위기가정지원금을 받아 병원비와 밀린 공과금 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박 씨는 “제게는 어둠 속에서 만난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은 자살 기도 여파로 허리를 다치고 우울증과 지병이 생겨 아무 일도 못한 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충격으로 박 씨와 딸도 우울증이 생겼다. 박 씨는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딸은 병을 이겨내고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계를 돕고 있다. 다행히 학원 한 번 가보지 못한 고3 아들(18)은 학교 수업만으로도 며칠 전 대학 수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에게도 희망이란 게 생긴 것.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구청이나 복지관에서 도와주시고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 주니 이제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한솔종합사회복지관 김정란 복지사는 “박 씨 가족은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있다”며 “아이들 학비라도 독지가들이 도와주면 재기하는 데 더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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