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 수준의 경제적 토대가 마련된 뒤엔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행복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일에서 ‘몰입’을 얼마나 경험하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몰입(Flow) 이론의 창시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클레어몬트대 교수(사진)는 최근 동아일보 행복원정대 취재팀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40년 동안 미국 시카고대에서 심리학과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긍정의 심리학’ 분야의 선구적 학자로 꼽힌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1963년 예술가들이 그들의 창의성이 발현되는 순간 ‘배고픔, 피로,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도 의식에서 사라진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완전한 집중의 상태를 몰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몰입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권력이나 부와 같은 물질적 이유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도 그렇다”고 말했다. 취업난으로 생활고를 겪는 청년들은 당연히 행복을 느낄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그는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보다 연봉이나 직업의 안정성 등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을 우려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이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분명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요구가 충족되면 높은 연봉이나 사회적 인정 등에서 오는 만족보다 일에서 느끼는 몰입의 순간이 개인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흥미를 잃은 의사나 사업가들이 약물이나 성적 쾌락, 혹은 단기적으로 자신의 일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은 언제일까.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도전 과제와 개인의 능력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됐을 때”라고 말한다. 도전 과제가 개인의 능력에 비해 너무 어려우면 불안해지고 도전 과제가 능력에 비해 너무 쉬울 때는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여가 생활보다 일에서 몰입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했다.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을 발휘할 때 몰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몰입으로 이끄는 일을 늘리고, 몰입을 막는 것을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와 스위스 싱가포르 등은 국민의 다수가 몰입을 경험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국가”라며 “소련과 같은 강력한 국가가 몰락한 것도 주민들이 몰입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 ‘유니버섬’이 지난해 세계 직장인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57개국 중 49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인들이 직장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행복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도 프랑스처럼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철이 없고 인생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고 반문했지만 몰입을 느낄 줄 알고 몰입에서 오는 행복감을 분명 경험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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