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씨(65·서울 중구 신당동)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초 집안 장롱에서 노모(老母)와 함께 금붙이를 뒤지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김 씨의 집 앞에 있었던 주택은행에는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침부터 긴 줄을 섰다. 김 씨는 “국민들이 갖고 있는 금을 팔아 나랏빚을 갚아야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외화가 너무 많아 걱정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기적 같은 발전상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외화 곳간이다. 광복 직후 세계 최빈국 신세였던 한국은 산업 발전을 위한 자본이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오고 부족한 물자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고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환율 상승과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한국은 2000년 순(純)대외채권국으로 올라섰고 지난해에는 순채권 규모가 2535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보유액 역시 지난해 말 현재 3636억 달러로 1960년(1억5700만 달러)의 2300배로 불어났다.
환골탈태한 한국 경제의 모습은 통계청이 10일 발간한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 책자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477억 원에서 2014년 1485조 원으로 3만1000배가량 증가했다. 세계 13위에 해당하는 성적표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같은 기간 67달러에서 2만8180달러로 420배가량 증가했다.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3만4356달러(1인당 GDP)로 이보다 더 높다. 한국 경제가 1953∼2014년 사이 연평균 7.3%의 고성장을 구가하며 이뤄낸 성과다.
1964년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1971년 10억 달러, 1977년 100억 달러, 1995년 1000억 달러를 차례로 돌파하더니 지난해에는 5727억 달러로 불었다. 세계 6위 규모다.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던 경상수지도 1998년 흑자로 돌아선 뒤 점점 개선돼 작년엔 흑자 폭이 892억 달러에 달했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온 나라가 동분서주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경제규모에 비해 외화가 너무 많이 쌓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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