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의 어느 날. 속으로 생각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은 오늘이 내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날일 것이라고. 이후 수능 점수에 맞춰 어느 대학에 지원하면 좋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장고(長考) 끝에 지원할 학교를 정했다. 그 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선 세상을 가진 듯 기뻤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어느덧 졸업을 바라보는 졸업예정자가 됐다.
내 선택을 좌우한 1순위는 대학의 ‘간판’이었다. 이후 한참 지나 그 선택에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배우고 싶은 학문과 관심 있는 전공은 따로 있는데….’ 이런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내 가슴을 눌렀다.
결과적으로 오류를 바로잡긴 했다. 복수전공이라는 제도를 통해 배우고 싶은 전공을 결국 공부하게 됐으니.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가 뭔지 알게 되고, 공부에 지친 나를 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담을 꺼낸 이유는 최근 언론을 통해 청년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본인 적성보다는 학교 간판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를 접해서다. 불안하니까 일단 조금이라도 간판이 좋은 학교에 지원하는 심정. 이해는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게 장기적으로 적절한 선택일까.
최근 제주에서는 ‘2015 특성화고 청년드림 잡페어’라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특성화고는 특정 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관광, 보건, 방송,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고교다.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많은 학생은 진작부터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고 한다. 학과의 전문성이나 졸업 후 전망 등도 일찍부터 고민한다. 그래서일까. 각종 통계를 보면 청년들의 취업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물론 특성화고 학생들도 ‘고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걱정한다. 사실 전반적으로 학벌이 중시되는 풍조는 여전하다. 얼마 전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학벌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대학 졸업자 중 절반이 넘는 59.3%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특성화고 학생들이 성공 스토리를 쓰며 그 영역을 넓혀가는 이유는 결국 본인의 적성을 일찍부터 찾아서다. 단순히 일찍부터 취업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배운 덕분에 ‘실신세대’(청년들 가운데 실업자와 신용불량자가 많음을 빗대는 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본인의 적성에 대한 고민은 일찍 할수록 좋다. 대학에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부모님 세대의 말은 유감스럽게도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다. 이른 고민을 통해 적성을 파악하고 뚜렷한 목적이 생긴다면 과감한 선택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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