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홍콩섬 지하철 케네디타운역 근처 주택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작은 빵집에서 직원이 갓 나온 빵을 진열하고 있었다. 이 직원은 다소 어눌한 말투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카운터 뒤편 유리벽 너머 100m² 남짓한 작업장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직원 10여 명이 빵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계량기에 반죽을 올리고, 모양을 빚어 오븐에 굽는 이들은 모두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재료 배합부터 쿠키 반죽, 굽기, 포장까지 스스로 해낸다.
이 빵집은 아이베이커리(IBakery) 1호점이다. 홍콩의 가장 오래된 자선단체 퉁와그룹(1870년 설립)이 2010년 ‘발달장애인 고용’을 목표로 만든 제과점이다. 아이베이커리라는 이름에는 ‘발달장애인인 나도 빵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발달장애인 6명이 시작해 현재는 홍콩 전역 11개 매장에서 발달장애인 72명이 일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은 48명이다. 작년 매출이 37억 원에 이르지만 출발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적한 주택가에 1호점을 연 뒤 2년간 적자를 냈습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기관, 대기업 등이 몰린 번화가에 2호점을 열어야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퉁와그룹에서 병원과 환자에 대한 자선활동을 담당하다 아이베이커리 창업에 나선 플로렌스 찬 씨(42)는 6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첫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홍콩시가 사회적기업에 주는 보조금 2억 원이었다. 시에 보조금 신청을 하자 공무원들은 1호점에 나와 현장 실사를 벌였다. 발달장애인을 실제로 고용하고 있는지, 근무여건은 어떤지 등을 꼼꼼히 점검하는 등 모두 4차례 평가를 거쳤다.
2호점은 홍콩시청, 상하이은행 등이 있는 지하철 완짜이(灣仔)역 인근에 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앞 정도 되는 곳이다. ‘발달장애인이 만든 빵은 위생적이지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오픈 키친’ 형태로 작업장을 꾸몄다. 점심에 혹은 퇴근길에 우연히 들러 인상적인 빵 맛을 본 이들이 다시 찾았다. 단골이 늘면서 1호점 적자를 메워줄 정도였다.
아이베이커리 매장은 벽지와 페인트를 항상 밝은 색으로 쓴다. 그림을 많이 걸어 화랑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한다. 장애인 직원이 밝게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에 신경을 쓴 것이다.
찬 씨는 “직원들이 긴장하면 손님도 덩달아 긴장한다. 아이베이커리는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장애인 취업률은 6%가량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를 둔 한국의 36.9%에 비하면 매우 낮은 취업률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아이베이커리의 등장과 성장은 홍콩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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