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거세질수록 법원 로비는 북적거린다.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청사 1,2층 각종 신청과에는 요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法)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 서적도매상은 자신과 거래하는 출판사 사장이 부도를 내고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꼴을 볼 수 없다며 자동차가압류신청을 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한 주부는 속수무책으로 고객 돈을 까먹은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질세라 몇몇 증권사는 이른바 ‘깡통계좌’투자자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
정리채권을 신고하면서 평소 거래가 없던 회사에까지 이중 삼중으로 신고하다 담당직원에게 꾸중을 듣는 중소기업인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평소 월 9천여건에 불과하던 3천만원 미만 소액신청이 ‘IMF체제’가 출범한 지난해 12월에는 월 1만2천건에 육박했다.
법원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대화로 해결할 작은 일도 요즘엔 무조건 법의 보호를 요청하는 실정이다”며 “개인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세상이 너무 삭막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이같은 현상이 불합리 부조리의 거품을 빼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래법무법인 박홍우(朴弘雨)변호사는 “예전엔 문제가 생겨야 법을 찾던 기업인도 요즘은 법률자문이나 경영상담을 먼저 하고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는 추세”라며 “일종의 선진화 과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