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아파트 안방. 50대 초반의 모건설사 부장 이모씨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인이 조그만 사각상자를 내밀었다.
“요즘 회사마다 감원하느라 난리인데 흰머리가 있으면 아무래도 ‘잘릴 위험’이 더 클 것 같아서…. 염색약이에요.”
“당신은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
이씨는 대뜸 부인에게 면박을 주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찡해왔다.
‘IMF한파’로 올들어 실직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약국과 제약업체의 염색약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교대지하철역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최희정씨는 “지난 연말부터 염색약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염색약제조 전문업체인 D제약의 마케팅담당자는 “새치머리용 염색약의 매출증가는 감원 바람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가중하면서 흰머리가 부쩍 늘어나는 세태와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아버지의 새치를 뽑아주고 용돈을 버는 자녀도 늘어나고 있다.
〈김경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