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광장동 산 21 「워커힐」.
한강과 광나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차산 자락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워커힐은 6.25전쟁 때 참전했다 전사한 미8군사령관 워커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산자락에 불과했던 이곳이 휴양시설로 바뀐 것은 박정희(朴正熙)정권 초기 일본 등에서 휴가를 보내는 주한미군 장병들을 유치, 외화를 벌기 위해서였다.
당시 박정권은 휴양시설 신축부지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별장이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은 이 곳을 선정했다. 설계에는 김수근(金壽根)씨 등 당시 국내건축설계 권위자 6명이 참여했다.
당시 경제여건상 민간자본으로 이 시설을 짓기 힘들어 정부가 직접 건설과 운영을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횡령 등 부정이 드러나 건설관계자가 구속되는 등 잡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63년 4월 20만평의 방대한 부지에 호텔 민속관 빌라 등 26개의 각종 위락시설을 갖춘 워커힐이 문을 열었다.
신축된 호텔을 「워커의 언덕」이라 부르기로 한 것은 호텔의 주고객층인 미군들에게 친밀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의 이용실적이 예상밖으로 저조, 적자운영에 시달리다 73년 선경에 인수됐다.
한편 워커힐이 위치한 아차산은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기를 거듭한 중요 요새 중 하나. 고구려 온달(溫達)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는 비장한 사연이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다.
〈윤양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