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은 북악산 저 산은 인왕산/봄마다 꽃피는 정겨운 효자골/집집마다 효성스런 아름다운 마음씨/서로 믿고 힘을 모아 앞서가는 으뜸동네….’
서울 종로구의 효자동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김동진(金東振)선생이 작곡한 효자동가(孝子洞歌)를 들으면 된다.동명이 유래된 효곡(孝谷)마을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효자동 100에 살던 조희정(趙希正) 희철(希哲) 형제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어머니와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강화로 피신했다.
그러나 곧 들이닥친 왜군이 어머니를 능멸하려 했다. 희정은 이를 맨손으로 제지하다 칼에 맞아 숨졌다. 희철은 왜군이 들고 있던 칼과 창을 빼앗아 꺾어버리고 싸워 이긴 뒤 어머니와 함께 산으로 달아났다.
희철은 어머니를 초근목피로나마 봉양했으나 자신은 굶주린데다 상처가 악화돼 결국 숨졌다. 조정은 이런 사정을 안 주변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형제의 본가앞에 쌍홍문(雙紅門)을 세우고 갸륵한 효성을 널리 알렸다.
효자동은 경복궁 바로 옆에 있어 환관들이 많이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 관사가 들어서고 일본인 거류집단지인 원효로와 이어지는 전차노선이 효자로에 개설됐었다.
현재 인구는 1만2천4백39명.
상업지역은 거의 없고 녹지와 주택가가 대부분. 하수도 공사도 청와대의 허가를 받을 정도로 규제가 심했으나 93년 이후 크게 완화됐다.
〈송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