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시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초. 수많은 고시생들이 여기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일부는 꿈을 이뤘지만 대다수는 고배를 삼켜야 했다. 그리고 또 일부는 아직도 책과 씨름하고 있다. 여기 고시촌은 신림동을 뒤덮는 서울대문화권의 일부였다. 서울대 도서관은 고시생들에게는 ‘일터’이자 ‘놀이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97년 서울대 도서관에 외부인(졸업생 제외) 출입이 통제되면서 신림동 고시촌은 변했다.
서울대생 및 졸업생들과 구별없이 도서관에서 동고동락하던 비서울대 고시학우들은 ‘퇴출’됐고 그후 신림동 고시촌은 두 개의 문화권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서울대 고시생(재학생 졸업생)들은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밥을 먹었다. 고시생들은 개별적으로 학원에 나가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인근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사법시험을 준비중인 서울대졸업생 문모씨(26)는 “다른 학교 출신 고시생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다”고 말한다. 4년째 이곳에서 사법시험 공부중인 타대학 출신 조모씨(32)도 “서울대생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문화권으로 나뉜 신림동 고시촌의 경계선은 상업은행 앞 골목. 서울대쪽으로는 서울대 문화권이다.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는 대학유흥가 속칭 ‘녹두거리’와 서울대운동권들의 ‘영원한 안식처’라는 사회과학전문서점 ‘그날이오면’이 이쪽이다. 학생들을 겨냥한 저렴한 호프집이나 분식집이 많다.
반대편 신림4거리쪽은 고시생문화권. 대부분 비서울대 출신의 고시생들이 고시를 준비한다. “한집 걸러 고시원,두집 걸러 학원”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고시와 관련된 업종이 많다. ‘고시생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은 식당도 있고 고시생을 겨냥한 단란주점도 있다. 남성전용 미용실도 눈길을 끈다. 간간이 30,40대 노장 고시생 모습도 보인다.
고시촌은 ‘미래의 사회주도층’이 그 꿈을 키우는 곳. 그래서 이 동네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세월이 흐르며 고시촌 모습도 변한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은 합격을 향한 고시생들의 뜨거운 열정. 그래서 신림동 고시촌은 언제나 희망이 넘쳐 흐른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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