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교보빌딩 글귀광고

  • 입력 1999년 2월 18일 19시 11분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 한복판의 광화문 네거리.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다정다감한 시구(詩句)로 거리의 표정을 밝게 만드는 것이 있다. 교보빌딩 전면에 걸린 대형 글귀간판이다.

‘모여서 숲이 된다/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숲이 된다/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

18일에는 고은(高銀)시인의 시구가 그의 필체 그대로 이 대형간판위에 확대되어 옮겨져 있다. 벌써 다섯달째인데 언제 읽어도 싫증나지 않고 읽을 때마다 산뜻함을 느끼게 한다.

교보빌딩 대형간판의 글귀는 이처럼 ‘도심 시민의 청량제’ 역할을 하며 벌써 9년째 광화문거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첫 선을 보인 것은 91년1월. 글귀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처음에는 사회상에 맞는 구호성 문구가 대종을 이뤘다. 그후 한동안은 정초 한달만 내걸고 내용도 주로 새해 덕담이었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에서 본뜬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92년 정초),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94년 정초) 등등.

그러다 96년1월부터 1년내내 걸리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은 98년1월에는 시대상이 반영됐다.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문구였다. 이 대형광고판의 글귀에 시선이 몰리자 부근의 한국통신과 현대해상화재빌딩 등에도 대형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고 광화문 일대 거리표정이 새롭게 바뀌었다.

최근에는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문구가 등장하고 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98년2∼9월)와 현재 고은시인의 시구가 바로 그것. 요즘은 1년에 3∼4회씩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쓸 문구를 찾는 작업에 교보생명의 전 직원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 광고판은 설치작업 자체도 구경거리다.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나무판을 건물벽의 철제 지지대에 붙이는 작업은 대형 크레인장비를 동원, 15명 가량이 꼬박 한나절을 매달려야 한다. 글자 하나는 장정 덩치 보다 크다. 디자인업체가 광고문구를 광목 천과 비닐 등에 인쇄하는데도 닷새가량 걸린다. 한번 교체할 때마다 드는 비용은 1천5백만원 정도.

이 광고판 아이디어를 낸 이는 교보생명 신용호(愼鏞虎·82)명예회장. 순수문학재단인 대산재단과 교보문고를 세운 바로 그 사람이다.

광고판 제작실무를 맡은 이경수(李慶洙)홍보과장은 “당분간은 도시인의 삭막해지는 마음을 다독이고 사색을 이끌 수 있는 차분한 글귀를 발굴해 게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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