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지하철역 보관함

  • 입력 1999년 4월 28일 19시 36분


28일 오후 6시경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의 현대백화점 지하입구. 사복을 입은 남녀 고교생 10여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손마다 책가방과 갈아입은 교복을 들고 순서를 기다렸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로는 부담없이 돌아다니며 놀 수 없잖아요.”

보관함에 짐을 넣을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의 말이었다.

학생들의 방과후 생활패턴이 달라지면서 지하철 보관함이 색다른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대부분 지하철역엔 푸른색 철제 박스로 된 보관함이 설치돼 있다. 주고객은 고등학생들. 때론 중학생과 심지어 대학생들까지 이용하기도 한다.

가장 붐비는 시간은 평일 오후 5∼7시. 학교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면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은 ‘탈의실’로 변한다. 거울 앞은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학생들로 빈 틈이 없다. 교복이나 학교에 입고 갔던 옷 대신 집에서 갖고 온 편한 사복으로 ‘변신’을 끝내면 가방 등 짐을 들고 보관함으로 향한다.

하루 보관함 사용료는 9백원. 밤12시를 넘기면 하루치 사용료를 더 내야 한다.

한 보관함에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은 이틀. 이 기간을 넘기면 서울 지하철역의 모든 보관함을 관리운영하는 ㈜동광레져개발측에서 짐을 꺼내 지하철 동대문역에 있는 사무실로 가져간다. 짐이 이틀 이상 빠지지 않으면 ‘회전율’이 떨어져 영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보관하고 있는 짐이 30여평 창고에 가득 찼어요. 3개월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옷가지나 가방 학용품 등은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보내고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처분합니다. 매일 대형 쓰레기봉투 4∼5개 분량을 수거하죠.”

㈜동광레져개발 직원 임재근(林載根·29)씨의 말이다.

보관함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곳은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잠실역 이대입구역. 유동인구가 많고 학생들이 많이 찾는 백화점 상가 유흥가 등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보관함 규모가 80칸 정도씩인 이들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수입은 각각 월 2백80만∼3백만원 정도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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