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제작 기간은 1개월 정도지만 관련 부품을 모으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
진공관 오디오는 해외의 개인 소장품을 찾아내 수집해야만 제작이 가능하다.
최종적으로 제작된 오디오는 매킨토시 프리앰프와 알텍 스피커, 가라드 301 LP플레이어 등으로 구성됐다. 모두 1950년대 진공관 오디오 명품들이다.
24일 저녁 대성음향 사무실을 찾았다. 한쪽은 수리 장비로 어지럽지만 다른 쪽은 오디오와 소파를 갖춘 거실 분위기다.
김 대표와 전 씨가 제작이 끝난 오디오로 1950년대 가수 앤 마그릿의 ‘왓 앰 아이 서포즈드 투 두(What am I supposed to do)’를 듣고 있었다. 구형 오디오는 당대의 음악으로 실험해야 제 기량을 발휘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튜닝(조율) 기간이에요. 제작이 끝난 뒤 한 달 동안 출근하다시피 하며 음악을 듣고 있어요. 주문한 대로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죠. 그래야 오디오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생긴다며 김 대표도 권했어요.”
전 씨는 “그동안 수천만 원짜리 현대 오디오를 들어왔는데 예전의 소리를 찾을 수 없어 김 대표를 찾았다”며 “이제야 가보로 물려줄 만한 오디오를 손에 넣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집에서는 오디오 제작뿐만 아니라 수리도 통상 며칠 걸린다. 1∼2시간에 뚝딱 고쳐주는 수리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 대표는 1980년 오디오 전문점을 차렸다. 그는 “사무실을 3번 옮겼지만 대흥동을 떠나지는 않았다”며 “아날로그(진공관)는 아무래도 원도심에 어울리지 않느냐”고 말했다.
오디오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음악다방이나 디스코텍, 레코드점이 주고객이었다. 이들 업소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영상시대로 접어들면서 관심분야를 1930∼60년대 음악을 중심으로 순수히 음악 만을 위한 오디오 제작과 수리로 돌렸다. 지금의 AV 시스템 오디오와는 소리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에 오디오가 저변으로 확대돼 고객도 개인 음악 마니아로 바뀌었다.
오디오 제작과 수리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팝과 재즈, 클래식을 즐겨 들었고 전축을 스스로 고쳤다. 청소년 때에는 서울의 유명한 음악다방인 쉘브르, 이브, 르네상스, 쎄시봉 등을 전전했고 대학 때에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귀와 손에 대한 훈련을 다양하게 거친 셈.
오디오점을 차린 뒤에는 불우이웃돕기 음악회를 열거나 1일 찻집을 열어 DJ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솜씨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 손님은 전국에서 찾아온다. 최근에는 한 오디오 잡지사에서 “인터넷으로 전문가를 수배했더니 김 대표 이름이 올라왔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소리의 장점과 매력을 잘 알아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고객에게 설명도 할 수 있어요.”
김 대표는 “오디오가 당시 음악의 분위기와 느낌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도 종일 옛 음악을 듣는다”고 말했다. 사무실을 나올 때에도 1960대 컨트리 가수 윌리 넬슨의 ‘올웨이즈 온 마이 마인드(Always on my mind)’가 흘러나왔다. 042-256-9134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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