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이요, 떨이.” “자, 왔어요, 오늘 아니면 못 사는 고등어가 왔어요.” “저기 아줌마, 이 싱싱한 토종닭 좀 봐.”
수단 좋은 장꾼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시장 안에 퍼진다.
‘후루룩∼’ 1000원짜리 국수를 힘껏 빨아 삼키는 소리, ‘왈왈’ 태어난 지 40일 된 강아지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러 나왔다.
24일 대전지하철 구암역에서 내려 1∼2분쯤 걸어가면 볼 수 있는 유성장의 풍경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잡고 따라 나와서 본 것 같은 시끌벅적한 장터에는 활기가 넘친다.
▽중부권 최대의 도심 장터=유성장날은 4와 9로 끝나는 날이다.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 할머니는 직접 잡은 다슬기를 광주리에 가득 담아 나왔다.
‘집에서 캔 것’이라며 땅콩을 담아 주는 아주머니는 덤으로 한 주먹을 더 얹어 준다.
유성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60여 년 전. 유성 변두리를 비롯해 인근 충남 논산과 공주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전 초입인 유성에 좌판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장날만 되면 1000여 명의 장꾼과 손님이 얽혀 중부권 최대 5일장으로 성장했다.
푸짐한 먹을거리와 수만 가지 생활용품은 유성장의 특징.
고추와 마늘장을 지나 유성약국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종류별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얼기설기 만든 나무의자에 앉아 순대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장꾼, 1000원짜리 멸치 국수를 맛있게 먹는 젊은 ‘넥타이 부대’도 있다.
돼지껍데기 고추장 볶음, 삶은 계란도 시장 구경에 나선 사람들의 먹을거리다.
주말이나 휴일이 유성장날과 겹칠 때 구암역에서 내려 시장 구경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 주는 교육도 된다.
▽생태와 황태=유성보건소 앞 좁은 골목 안에 있는 고모네식당(042-822-3093)의 생태찌개는 ‘시원함과 얼큰함’ 그 자체다.
무와 파가 듬뿍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고 부드러운 생태살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황태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황태고을(042-823-5458).
대전시에서 30여 년 동안 예산담당관, 국장 등을 지냈고 미식가로 소문 난 송광섭(59) 구암역장을 따라 그 집을 찾았다. 역 2번 출구에서 진잠 쪽으로 150m쯤 걸어가면 좌측 조선아파트 1층에 있다.
좌석이 19개에 불과해 자리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 먹은 손님이 일어서자마자 다음 손님이 빨리 먹기 위해 스스로 상을 치울 정도.
국물은 3차례 걸러내면서 5시간 동안 끓여 사골국물처럼 뿌옇다. 황태는 항아리에서 일주일 정도 숨쉬게 숙성시켜 잔뼈까지 섬세하게 바른다.
간을 맞추는 양념은 새우젓 중 최고인 육젓만을 사용한다. 혼자 찾아와 먹는 젊은 여성도 눈에 띈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유성장로교회 앞에 있는 안창집 용진식당(042-823-8181).
주인장 김길남(55·여) 씨는 고집스럽게 안창만을 고집한다.
한우에서 1.6% 안팎 나오는 최상급 ‘A1++’만을 사용한다. 매운 멸치고추볶음, 안창껍질과 듬성듬성 썬 무를 함께 넣어 6시간 끓인 탕국, 콩나물냉국도 일품이다.
▽공원이야 역이야=구암역만을 둘러보아도 소풍 나온 느낌을 준다. 새소리와 물소리, 예술작품과 나무, 그리고 꽃들이 어우러져 ‘구암’이 아니라 ‘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유치원생들의 견학 코스이기도 하다. 모두 주민들이 직접 기부한 것들이어서 더 눈길이 간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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