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표적 화가인 하워드 호지킨의 초상화 전시가 런던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올해 3월 23일부터 한창이다. 1932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꾸며 그림을 그려 왔던 80대의 화가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전시를 불과 2주 정도 앞둔 3월 초 세상을 떠났다. 출장길에 이 전시를 인상 깊게 보았다. 그는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달리 독특하게 추상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핏 보면 얼굴이 아닌 그냥 과감한 붓 터치처럼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의 표정도 있고, 감정도 보인다.
초상화에는 화가가 다른 사람을 모델로 그린 것도 있지만, 자신을 모델로 삼아 그린 자화상도 있다. 이 전시를 보고 나서 문득 초상화와 리더십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리더십은 어떤 그림일까? 직장에서 우리는 리더로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자화상을 그릴 때가 있고, 남이 나의 리더십에 대해 그리는 그림이 있다. 나의 리더십에 대한 두 가지 그림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는 어떤 부분에서는 겹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그림의 차이에 대해 나는 한 가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2004년의 일이다. 당시 호주의 한 나이 지긋한 코치로부터 리더십 코칭을 받게 되어 주변 동료 직원들이 나의 리더십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똑같은 설문지를 갖고 나 역시 내가 바라보는 나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했다. 두 가지 사이에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간극이 큰 부분이 있었다.
이 결과를 받아 들고 나는 그 코치에게 “사람들은 나를 잘 이해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코치는 “네가 틀렸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안다는 말인가? 그는 그렇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인데, 당시에는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세계 최고의 리더십 코치로 꼽히는 마셜 골드스미스 역시 나에 대한 진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내가 동료 10여 명 앞에서 발표를 한다고 치자. 그 자리에서 발표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발표자이다. 내 발표를 듣는 사람의 공통적 의견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발표에 대한 평가보다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높다.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은 나에 대해 내가 아는 모습과 모르는 모습, 남이 나에 대해 아는 모습과 모르는 모습을 두 개의 축으로 놓고 설명한다. 나만 알고 남이 모르는 영역이 비밀이라면, 나에 대해 남은 아는데 나는 모르는 영역이 있다. 이 부분을 사각지대(blindside)라고 부른다.
조직 내부에서 힘이 커지고, 더 높은 직책을 맡을수록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사각지대는 커지는 특성이 있다. 왜일까? 우리 모두가 알고 조직 내에서 실천하는 덕목이 있는데, 힘센 사람에게 듣기 싫어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리더십에 대한 진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지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자신의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싫은 부분을 이야기할까?
우리는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리더십의 교훈을 얻게 된다. 하나는 리더의 힘이 커질수록 진실이 아래로부터 전달되기는 힘들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솔직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만 옳다는 주장만 하다가는 리더로서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리더십은 마케팅과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나의 현실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진실을 전달해줄 수 있는 선배나 동료, 후배가 주변에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리더십이라는 초상화를 왜곡되지 않게 그려서 내게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은 자화상이 아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리고 있는 초상화에 의해 결정된다. 나에게는 그런 초상화를 그려주는, 나에 대한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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