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질 때가 있다. 몹시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지낼 때도 있다. 서로 시점이, 이유가,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누구나 그런 시간들을 겪어 왔고, 또 앞으로도 종종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간들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최근 ‘진짜’ 대화를 한 때는 언제였을까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하는 수많은 ‘대화’ 중에 정말 마음을 나누는 경우는 얼마나 있을까? 많은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직장에서 소통의 목적은 대부분 업무 추진과 관련된 것이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상사나 후배, 동료와 마음까지 나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직장 안팎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힘든 상황 앞에서 절망할 때가 있다. 이때 텅 빈 회의실에서 전화기를 들고, 혹은 퇴근 후 차 한잔 마시며 진정 마음을 나누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필요하다. 그는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고, 혹은 때론 내 말과 마음을 잘 들어주는 지인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정용실 아나운서는 하루키의 이 말로부터 영감을 받아 최근 ‘공감의 언어’라는 책을 썼다고 했다. 정용실의 말을 빌리면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깊이 연결된 존재’가 우리에겐 필요하고, 그런 상대와 ‘공감의 언어’를 서로 나눌 수 있다. 나에게 그런 존재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에게 깊이 연결된 그런 존재일까? 사실 우리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실제보다 ‘센 척’을 하면서 살아간다. 몰라도 아는 척, 문제가 있어도 없는 척, 약해도 강한 척.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이 잘 풀리는데 왜 나만 이렇지…’ 하면서 속상해한다.
하지만 ‘센 척’은 경쟁 상황에서 때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는 물론이고 일을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자이자 작가인 대니얼 코일은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행동론을 연구하는 제프 폴 저의 ‘취약성의 고리(vulnerability loop)’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한 사람이 자신이 취약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이 자신도 취약하다는 신호로 화답하면서 서로 취약성을 공유하게 되고 이는 높은 신뢰도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조직 컨설턴트인 패트릭 렌시오니는 이를 ‘취약성 기반의 신뢰’라는 용어로 부른다.
상대방에게 먼저 약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 상대방이 내게 계속 ‘센 척’을 하는지, 아니면 같이 ‘실은 나도 힘든 일이 있어’라고 하면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지를 보면 이 사람과 내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제대로 된 신뢰와 팀워크를 만들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얼마 전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취약성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장과 고위 임원들이 둘러앉아 매출 실적이 아닌 살아오면서 자신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그리고 인생 최대의 실수 등에 대해 나누는 자리였다. 약점을 나누는 것이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동시에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가 활발한 정보의 공유와 느슨한 연결을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는 반면 때론 사람들을 불행하게 느끼게 만드는 이유는 저마다 최고의 순간을 나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나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사교를 위한 모임에 나가게 되면, 때론 소셜미디어로는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얻거나 인맥을 쌓기도 하지만 어색하고 마음이 피곤해질 때가 있는 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센 척’을 해야 하거나 이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하지 말고, 사교적 모임을 나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약한 부분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이 지치고 힘든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며, 그런 상대나 기회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때론 빈 공책에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혼자 끼적이는 메모가 그런 고마운 상대가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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