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이 질문을 대학생이 아닌 40대 후반의 직장인이 할 때가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자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가장 오래 일한 직장을 그만둘 당시의 나이는 49.1세이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현재 다니는 직장 생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어린 시절 했던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수십 년의 직장 생활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 수 있고, 돌아보면 비교적 즐거운 생활이었으나 이 직장을 떠나고 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뚜렷한 기술이 내게 남는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아서 그랬는지, 어느새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직장을 나오더라도 무언가 일을 하기는 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무작정 프랜차이즈나 치킨집을 여는 것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걱정만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래를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내는 방법 중 하나는 내 과거를 살펴보는 일이다. 10여 년 전 내가 직장에서 나와 독립을 하기 전 고(故) 구본형 선생이 진행하는 캠프에 들어갔을 때, 그가 준 과제물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역사를 써보는 것이었다. 최근 서점에 들렀다가 일본의 지식인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일본 릿쿄대에서 50세 이상만이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의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귀퉁이를 접었던 부분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자기 역사 연표를 만들어 본다. 이력서에 우리는 언제 학교를 졸업했고, 언제 직장을 이동했는지 날짜순으로 적혀 있다. 이를 확장해 보는 것이다. 언제 태어났고, 언제 이사를 했으며, 언제 중요한 친구를 만났고, 직장에서 어떤 성취와 실수를 했는지…. 자기 나름의 연표를 만들어 본다. 이때 옆으로도 연표를 확장하여 그 시기에 한국 사회와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적어본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세상의 흐름과 내 역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또 사회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다 보면 기억나지 않던 내 역사의 일부가 떠오를 수도 있다.
둘째, 에피소드이다. 연표를 만들다 보면 내 삶에서 떠오르는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어느 친구와의 싸움일 수도 있고, 여행을 가서 바다를 보았던 장면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일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와 고생하며 프로젝트를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에피소드를 정리해보자. 이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 일기장이나 메모, 소지품 등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창고에 두었던 이런 물건들을 꺼내어 기억을 떠올려보자.
셋째, 인간관계 클러스터맵을 작성해 보자. 우리 삶의 각 단계에서 여러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도표나 그림으로 정리해보자. 내가 일해 온 분야에 들어올 때 내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누구인가, 내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넷째, 자신의 역사를 다 쓰고 나면 후기를 쓴다. 다치바나는 후기를 편지의 추신처럼 자신의 역사를 쓰고 나서 추가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으라고 한다. 머리말은 역사를 쓰면서 내가 느꼈던, 역사를 쓰는 과정이 나에게 의미한 바를 적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깊이 있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피다 보면 이 작업은 자연스럽게 미래의 역사로 연결된다. 5년 단위로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적어보자. 미래의 역사를 쓰다 보면 내게 남아있는 시간, 특히 경제 생활을 하거나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치바나의 수업에는 50세 이상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30, 40대에 1년에 한 번, 하루만이라도 내 삶의 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정리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삶은 어떤 의미였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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