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高) 성취(high achievement)와 과한(過) 성취(over-achievement)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양쪽 모두 무언가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고성취자들은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도 즐긴다. 과성취자들은 결과에 집착하며 과정을 즐기지는 않는다. 고성취자들은 성취의 결과를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성취자들은 끊임없이 “나 정말 능력 있는 사람 맞아?”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존재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갖는다. 또 지속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과성취자들이 실패를 경험했을 때이다. 이들은 실패로 인해 심한 상실감을 크게 느끼며 자신을 탓하고, 남들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게 된다. 이들에게 성공이란 내가 즐기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승진이나 높은 직책처럼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결과여야 한다.
사회심리학자인 로버트 아킨(1950∼2016)은 과성취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세 가지 체크리스트를 제시했다. 첫째, 나는 성공을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보다 성공이 외부에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가. 둘째, 결과물을 성취하려는 것보다 나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셋째,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서 일 이외에는 가족, 취미, 사회적 생활이나 놀이 등은 신경 쓰지 않고 있는가.
과성취와 유사한 것이 ‘핑계만들기(self-handicapping)’이다. 핑계만들기란 심리학 용어로 성공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낄 때, 일부러 일이 잘못되도록 만들어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탓이 안 되도록 하는 전략이다. 시험이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일부러 공부나 연습을 안 하고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핑계만들기를 하는 심리는 과성취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치(self-worth)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갖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과성취자가 노력을 통해 자신을 입증하려고 한다면, 핑계만들기를 하는 사람은 일부러 장애를 만들어 실패해도 자신이 비난받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2003년 프랑스의 유명 셰프로 미슐랭 별 셋을 받은 베르나르 루아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는 또 다른 식당 평가에서 점수가 강등되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미슐랭에서 별 셋이 둘로 떨어질 것이라는 소문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과성취자들의 심리적 불안이 극단적으로 갈 때 취하는 행동 중 하나가 자살이기도 하다. 과성과 심리를 만들어내는 원인에 대해 심리학자 버글래스와 존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부모에게 입증하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자란 성장과정 때문일 수 있다고 보았다.
최근 과성취와 핑계만들기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몇 가지 분야의 일 중에서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은 무엇인가. 남의 평가와 외부적으로 보이는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때는 언제이고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불확실한 결과 앞에서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냈던 때 나는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
얼마 전 흥미롭게 읽은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지음)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사랑처럼 찾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는 대목에 많은 공감을 했다. 아킨의 연구 결과를 읽으며 이 대목이 떠올랐다. 일의 결과도 우리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노력 끝에 찾아올 수도 있고 때로는 아닐 수도 있는.
“나는 얼마나 훌륭한 사람일까?” 종종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혹은 주변 사람에게 던질 때가 있다. 얼핏 이런 질문은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기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진다면 과성취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아킨은 질문을 존재가 아닌 행위에 초점을 두어 바꿔보도록 권했다. “지난번에 나는 얼마나 잘했었지?” 그리고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 노력의 결과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올해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그 과정을 즐겼던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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