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품은 ‘행리단길’… 젊은층 ‘취향 저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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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인사이드]
수원화성 옆 행궁동 일대

1일 경기 수원시 ‘행리단길’. 골목에 들어서면 감성적인 한옥과 이색적인 카페, 음식점 등을 만날 수 있다(왼쪽 사진).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정월 나혜석 생가 터도 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1일 경기 수원시 ‘행리단길’. 골목에 들어서면 감성적인 한옥과 이색적인 카페, 음식점 등을 만날 수 있다(왼쪽 사진).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정월 나혜석 생가 터도 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1일 오후 1시경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의 한 골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여파로 연인과 가족들이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골목마다 소셜미디어에서 소문이 난 맛집들에서는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이곳은 서울 ‘경리단길’처럼 개성 넘치는 맛집과 카페가 몰려 있다고 해서, 언젠가부터 ‘행리단길(행궁동+경리단길)’이라 불리는 길이다.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는 물론이고 가족 단위 손님들도 몰려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오수정 수원문화재단 관광운영팀장은 “언제부터 그리 불렸는지 모르지만, 보통 행궁동 일원 행궁로 420m와 신풍로 1km 인근을 행리단길이라 한다”고 말했다.

행리단길의 탄생은 2013년 열린 ‘생태교통 수원’ 축제의 영향이 컸다. 수원시에서 130억 원을 투입해 골목길과 낡은 간판을 정비하고 전선을 정리하며 이미지 반전에 성공했다. 2017년 8월 골목길 곳곳을 빛으로 장식하고 다채로운 문화 체험을 하도록 기획한 ‘수원야행(夜行)’도 한몫했다. 김기배 수원시 관광과장은 “야행 축제에 3일 동안 12만8000여 명이 찾아오며 소셜미디어 등에서 소문이 났다”며 “최근까지 문을 연 식당과 카페가 20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사실 행궁동은 수원의 대표적 구도심 지역이었다. 전체 건축물의 85.7%가 노후화됐다. 지난 30년간 인구는 최대 대비 59.8%가 줄었을 정도로 쇠락이 심각했다. 한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찾아온 젊은이들의 눈에 이 거리가 포착되며 전환기를 맞았다.

이곳의 특징은 수원화성 안쪽에서 화성행궁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골목길에 숨은 상가들이다. 오밀조밀 붙은 단독주택들을 따라 걷다 보면 개성에 맞게 꾸며진 식당을 만나는 매력이 상당하다. 감성적인 한옥도 곳곳에 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생가를 찾아가 보는 재미도 있다.

이채선 씨(32)는 “골목을 미로 찾기 하듯 다니며, 추억의 물건을 파는 상점과 액세서리 가게, 동네 책방들을 들르기 위해 주말에 자주 온다”고 말했다. 윤다혜 유레카롱 대표(26)는 “인근의 언니 가게에 왔다가 동네가 예뻐서 지난해 3월 가게를 열었다”며 “배달 사업도 병행해 사업 확장에 더욱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주차시설이나 볼거리는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이화 행궁동 상인회장(51)은 “행리단길은 지하철이 바로 연결되지 않아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엔 한계가 있어 주차공간 확대가 필수적이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 상인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반시설이 좋아지고 방문객이 늘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2017년 행리단길 안 상가 임대비용은 33m²(약10평)가 평균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같은 규모가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80만 원으로 2배로 늘었다. 행궁동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행리단길은 수원의 다른 지역보다 권리금도 저렴하고, 옛 정취도 유지하다 보니 인테리어 비용이 적게 들어 그간 창업에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현재는 매물도 거의 없는 상태다”고 전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수원화성#행리단길#행궁동#스트리트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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