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바둑9단 서봉수와「정치9단」김영삼

  • 입력 1997년 3월 14일 20시 21분


요즘처럼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영혼까지 맑게 해주는 한줄기 청량한 화두를 들려주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진로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일본 중국의 고수들을 차례로 꺾어 기적같은 9연승을 이룩한 徐奉洙(서봉수) 9단이다. 『바둑은 어차피 모르는 길을 가는 고행이지요.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면 겁이 나지만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흐름에 순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움 이긴 「9단」의 지혜▼ 그의 말대로 평생 曺薰鉉(조훈현)의 칼을 몸으로 막아내며 체득한 깨달음이다. 서9단의 화두는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차피 모르는 길을 가는 두려움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 같이 들린다. 그는 승자만이 살아 남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매순간 맞닥뜨리는 떨림을 이겨내는 길은 자기를 버리고 이치에 순응하는 「빈 마음」이라고 담담하게 설파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달인(達人)의 눈으로 삶의 새 판을 짤 수 있는 경지에 들어서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며칠전 보도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젊은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은 또 다른 면에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무겁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미국의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5년간 56편의 논문을 발표했던 「천재 교수」가 수재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실력이 모자란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친다는 행위의 크고 높은 뜻에 대한 치열한 도덕적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성취에 대한 불안과 진리에 대한 부끄러움이 『자신없다』며 여러차례 교수직 사임의사를 표명하게 했을 것이다. 그 유리알처럼 순수하고 연약한 지적 염치(廉恥)는 위선과 오만, 외화(外華)와 가식으로 가득찬 오늘의 세태에 큰 경종을 울린다. 됫글 배워 말글 팔고 남의 힘에 기대어 자신을 뽐내기에 눈이 어두운 시대에 그 결벽한 양심의 고뇌와 갈등은 너무도 값지다. 만약 「정치 9단」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이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넘어 자신과 이웃에 대한 책임 희생 헌신에 투철한 자기규제의 룰을 창출해내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다면 오늘 김대통령이 맞고 있는 굴욕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권력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승부의 두려움을 힘으로 돌파하는 모험으로 일관했다. 그가 권위주의의 칼을 맞으면서 체득한 것은 권위주의의 칼 바로 그것에 대한 선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김대통령이 보이는 후퇴와 양보가 삶의 두려움에 대한 허심탄회한 각성이기를 바라는 것은 주책없는 일일까. ▼답답한 아버지의 「침묵」▼ 또 만약 김대통령의 아들 賢哲(현철)씨가 자살한 천재 교수의 두려움에 털끝만큼이라도 생각이 미칠 수 있는 자기성찰의 지혜가 있었더라면 오늘 그에게 퍼부어지는 의혹과 비난의 십자포화는 맞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결국 숙(菽)과 맥(麥)을 분간할 줄 모르는 「철부지」에게 천재의 떨림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혈연으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마침내 정권재창출이라는 큰일까지 주도하려 한 방자한 불장난을 방치한 사람이 잘못인 셈이다. 비뇨기과 의사까지 끼여든 아들에 관한 추문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침묵을 지키는 아버지는 아들의 유죄(有罪)를 비호하는 격이 된다. 아들을 단죄하는 일이 두렵고 떨리지 않은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은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기와 불안에서 구하는 피할 수 없는 순리이기 때문이다. 김종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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