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워터게이트를 생각한다

  • 입력 1997년 4월 11일 20시 11분


한보청문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좀처럼 드러날 것같지 않아 보인다. 그 엄청난 정경유착 비리사건의 「몸통」이 鄭泰守(정태수)씨나 정씨가 「하늘처럼 알았다」는 洪仁吉(홍인길)씨 한사람이 아니라 「청와대」라는 거대한 권력집단 같다는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증거가 없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증인들은 입을 열 듯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흔든다. ▼ 나라 뒤덮은 「불신의 구름」 ▼ 『진실은 드러나지 않아요. 당신도 진실은 잡지 못할 거예요』 1972년 6월17일 오전 2시 워싱턴에 있는 워터게이트빌딩 6층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의 「삼류 절도사건」에서 꼬리가 밟힌 「백악관의 음모」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워싱턴 포스트지 칼 번스타인기자에게 닉슨대통령재선위원회 여직원이 겁에 질려 들려준 「충고」였다. 『진실은 교묘하게 은폐되고 있어요. 아무도 몰라요. 당신들도 미행당하고 있어요』 진실은 정말 그렇게 숨어버리는 것일까. 한보사건 수사당국은 이미 모종의 진술을 확보해놓고도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청문회를 숨죽여 주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검찰이 「정태수 리스트」에오른정치인들 을조사하겠다고 때늦게 팔을 걷고 나선 것이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몇명의 이름이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난 뒤라는 사실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청문회를 골똘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끊임없이 부풀어오른다. 세론(世論)은 음모의 뿌리가 92년 대선자금일 것이라고 추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 파괴력에 생각이 미치면 두려움마저 인다. 짙은 어둠의 그늘에 웅크린 진실의 한 자락을 밝은 빛의 광장으로 끌어내지 않는 한 나라를 두껍게 뒤덮고 있는 불신의 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가 없다. 이 구름을 걷어내야 한다. 구름이 걷힌 뒤의 문제는 그때 다시 정리해도 늦지 않다. 누구도 국가의 파산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본능은 거부할 것이다. 닉슨이 끝까지 워터게이트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은 그 자신이 고백했듯 본능때문이었다. 그 닉슨도 결국 「국가이익」 앞에 굴복했고 그를 그렇게 몰아간 것은 언론과 의회와 법원이었다. 그 언론의 첨병이 워싱턴 포스트의 초년병 29세의 보브 우드워드와 28세의 칼 번스타인이었다. 그리고 암초에 부닥친 우드워드를 심야의 주차장으로 불러내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은 「내부 고발자」였다. 한보사건과 金賢哲(김현철)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언론에 대한 질책도 따갑다. 언론이 일찍이 워싱턴 포스트의 젊은 기자들처럼 의혹을 파헤쳤더라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비난이다. 권력의 힘이 빠지자 고장난 기관차처럼 권력에 달려들어 나라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힐난까지 덧붙여진다. 굳이 변명하자면 언론에도 한계는 있었다. 권력의 협박에 몰려 김현철의혹에 접근하기를 기피한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언론이 진실을 알고도 숨기고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풍문은 있으나 증거는 손에 쥘 수 없었고, 진실을 가리는 벽은 너무 높고 당당했다. ▼ 무거워진 언론의 역할 ▼ 한보사건과 김현철의혹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벽은 아직도 견고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벽 한쪽이 무너지고 틈새가 드러날 것이다. 언론은 속죄를 위해서라도 밤낮없이 틈새를 비집고 진실의 낱알들을 집요하게 주워모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많다. 우드워드기자의 고발자는 말했다. 『홍수가 닥쳤어. 아무도 못 막을걸. 조만간 다 드러날거야』. 언론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 땅에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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