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김대중)씨가 다시 제1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대통령에 네번씩이나 출마하는 것은 국민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지만 이번에 또 떨어질 생각은 없다고 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대통령에 세번이나 나왔지만 한번도 공정한 심판을 받지 못했고 나라를 맡아서 정말로 멋지게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를 못잡고 나이만 먹은 것이라고도 했다. 한(恨)과 겸연쩍음이 묻어나는 말이다.
▼ 「지역주의」에 웃고 울고 ▼
김대중씨는 한때 우리 시대의 고난과 이룰 수 없는 꿈의 표상이었다. 그는 패배를 숙명으로 안고 태어난 사람같았다. 날아오를 수 없는 창공을 향해 끝없이 날개를 퍼덕이는 상처입은 새와 같았다. 오해 편견 조작으로 회칠당한 초상(肖像)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대의 속죄양이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그런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그가 또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자산이 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이미지가 굴레인 것도 사실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그는 긍정이 부정이요 찬사가 비난이 되는 기묘한 운명을 타고났다. 그 운명은 화석처럼 굳어 있다. 대통령병 환자, 지역감정의 화신, 과격 급진주의자, 말바꾸기 명수 등은 그에게 끈질기게 붙어다니는 부정적 이미지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청산해야 할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부정까지 덧붙여졌다.
그는 92년12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할 때 모든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95년7월 정계로 복귀하면서는 현실이 자신을 배신했고 국정혼란과 제1야당의 기능마비가 그를 다시 불러냈다고 했다. 세월은 무섭게 변했다. 그를 패배시켰던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추락하고 그는 대통령후보로 회생했다.
김대중씨는 최고의 개혁은 정권교체이며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50년 헌정사에 금자탑을 세울 호기라는 말로 야권후보 단일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관한 한 그는 벗어나기 어려운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 그의 세번의 패배는 우리나라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는 좌절을 안겼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좌절로 이어졌다. 그의 탓만은 아니라 해도 그 역설의 죄는 크다.
그는 우리 정치의 청산해야 할 이데올로기가 된 지역주의의 피해자이자 수혜자였다. 그를 평가하는 잣대는 경륜과 지도력보다는 지역주의의 눈금이 더 굵었다. 김대중씨에게는 지금도 이것이 함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왜 정권교체가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통합을 이루는 대안인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그는 지역주의의 화신이자 대통령병자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지 못할 것이다.
▼ 21세기 비전으로 승부를 ▼
차기 대통령은 국가를 21세기로 진입시키는 대통령이다. 김대중씨는 한 사람의 원로 정치인으로서 여당 후보와의 소극적 대결보다는 넓은 지평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적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성실하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큰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승부할 때 우리 정치수준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고 그의 네번째 출마가 국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또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에 어울리는 일이 될 것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