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훈」할머니 뿐인가

  • 입력 1997년 6월 20일 19시 50분


캄보디아의 한 후미진 시골에서 발견된 「훈」할머니의 갈기갈기 찢긴 생애가 아직도 피흘리는 우리 근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아프게 증언한다. 머나먼 캄보디아, 그 생소한 땅에 강제로 끌려가 무참히 짓밟혔던 우리의 순결한 딸 「훈」할머니는 그를 그곳까지 끌고간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밀림에 버려졌다. ▼ 日선 버리고 우리는 잊고 ▼ 자기 이름도 잊고 부모형제 이름도 잊었다. 태어나 자란 고향마을 이름도 기억의 저편 망각의 늪으로 사라졌다. 모국어도 잊었다. 어머니 아버지 아리랑, 그런 한두개 사무친 단어들만이 뇌속 깊이 파편마냥 박혔다. 지난 50년의 혹독한 세월이 그에게서 기억능력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이다. 어쩌면 그 철저한 망각이야말로 육신을 파멸로부터 구해낸 마지막 정신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훈」할머니가 우리의 잠든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 그를 버린 쪽은 일본 군국주의였지만 그를 잊은 쪽은 우리였다. 우리 곁으로 살아 돌아온 또다른 「훈」할머니들에게도 우리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한복판 일본대사관 앞에서 몇몇 생존한 또 다른 「훈」할머니들과 정신대관련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국가적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시위를 6년째 벌이고 있어도 이를 알은체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군국주의 일본이 1932년부터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에서 강제동원한 군대위안부는 20만명, 그중 70∼80%가 한국 처녀들이었다. 그들은 「천황의 하사품」 「성전(聖戰) 완수의 병기(兵器)」로서 중국 동남아 각지와 남태평양군도에 일본 군용선 수송 1순위로 「배달」됐다. 이 군대위안부는 일본군이 입안하고 일본 정부 또는 식민지 정부가 긴밀히 협조해 자행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반인도적 조직범죄였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그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지금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앞세워 아시아 각국 군대위안부 보상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속셈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 정부의 국제법적 책임을 규정한 유엔 인권위원회의 정부 직접보상 권고를 피하자는 것이다. 마지 못해 「도덕적 책임」만 인정하면서 군대위안부들이 당한 치욕적 인권유린을 돈 몇푼으로 보상하고 끝내겠다는 심산이다. 일본 우익들은 이것마저 불만이다. 걸핏하면 군대위안부가 「상행위」였다느니 「강제로 끌려갔다는 객관적 증거를 대라」느니 하며 파렴치한 망언들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해 이처럼 오만한 데는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 정부가 지금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의있는 대책」이 고작이다. 군대위안부 진상규명도 생존자찾기도 전적으로 민간단체에 미뤄놓고 있다. 이러고서야 제2, 제3의 「훈」할머니가 동남아 어느 오지에 생존해 있다 한들 찾아낼 방도가 없다. 찾아낸다고 해도 일본 정부로부터 정의(正義)에 입각한 보상을 받아내게 할 수도 없다. ▼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 프놈펜에서 귀국의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훈」할머니에게 잃어버린 고향과 가족을 찾아주는 것도 급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또다른 「훈」할머니를 찾아내고 국내외에 생존해 있는 2백명도 채 못되는 위안부할머니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방법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하는 것 외에 달리 없다. 정부는 이 일을 적극 떠안아야 한다. 50년 세월을 건너 뛰어 우리 앞에 나타난 「훈」할머니는 이것을 재촉하고 있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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