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여중2년생 등이 「막가는 인생」에 복수라도 하듯 찍었다는 음란비디오사건 충격을 좀처럼 떨쳐내기 어렵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도 하찮은 삶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는지 속시원히 읽어내기 어렵고 그 어처구니없는 「장난」이 얼마나 엄청난 자기파괴 행위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아이들에게 길러주지 못한 우리 교육현실이 절망적이다.
▼ 꿈을 빼앗는 公敎育 ▼
음란비디오를 만든 아이들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내려앉게 한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그것이 우리나라 대도시 평균 중고생들이 은밀히 숨기고 있는 평균적 행태의 한 단면이라도 된다면 이 사회의 장래는 어찌 되겠는가. 음란비디오를 보았다는 아이들이 뭘 그 정도로 야단법석이냐고 반문하고 있다니 이런 근심이 결코 부질없는 일만은 아닐 것도 같다.
10대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호들갑」을 경고한다. 10대 사회의 소수 예외적 일탈사건을 매스컴이 소나기식으로 과잉보도함으로써 모방탈선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다. 이미 성경험을 했거나 비디오방 등에서 음란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 중고생들에게 이런 극단적 일탈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식이다. 그 남 얘기하듯 하는 냉소주의가 또 절망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모럴은 오히려 주변문제에 불과할 지 모른다. 최근 발생하는 미혼모의 절반 가량이 10대이고 유흥업소 접대부의 30% 정도가 10대라는 보고들이 결코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성을 수치심도 죄의식도 없이 자발적으로 상품화하는 일부 10대들의 성모럴 추락이 결국 사회탓이 분명하다면 10대 탈선에 사회와 가정이 져야 할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왜 10대들이 학교를 등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처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근본원인을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기 삶에 보람과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가꾸고 북돋는 일이 대통령을 잘 뽑고 경제를 살리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아이들을 어떤 인간상을 지닌 사람으로 길러내야 할 것인가 하는 합의는 명쾌하게 정립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이 방황하는 것은 한마디로 교육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가정교육도 문제지만 공교육이 아이들의 꿈을 억압하거나 꿈을 펼칠 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소수 공부 잘하는 「우수 학생」들을 위한 공간일 뿐 그보다 더 많은 평범한 「기타 학생」들에게는 좌절과 열등감을 안기는 간이 대합실에 불과하다. 사회는 10대의 본능을 쉴새 없이 유혹하고 말뿐인 인성교육은 그 유혹의 차단에 무력하다.
▼ 「뒤처진 양」감싸줘야 ▼
결국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교육환경과 교육철학에 대한 심각한 반성 위에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들이 자기를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처럼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시장원리와 경제논리에 따라 수월성과 효율성을 몰가치적으로 추구하는 교육으로는 아이들을 규율 질서 협동 희생 책임감에 충만한 창의적 인간으로 길러내기 어렵다.
기업이 이윤을 챙기듯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이기(利己)를 추구하도록 내모는 교육으로는 10대의 가출 폭력 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는 생산성을 경쟁하는 시장이 아니라 뒤처진 한마리의 양을 감싸 안아 보통사람들의 무리진 행렬에 고이 합류시키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공교육이 그 사명을 못다할 때 10대의 탈선은 끝없이 번져갈 것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