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이른바「趙淳 변수」

  • 입력 1997년 8월 15일 20시 22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趙淳(조순)씨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 유도회장(儒道會長)에도 출마했던 그는 2년 전 서울시장 취임 1개월째 인터뷰에서 「대권 욕심」을 묻는 질문에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고 대답했다. 올 들어서는 수상한 언동이 보다 구체적이었다.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거나 「모든 것이 운명이라면 바른 운명은 순순히 받아들이겠다(莫非命也 順受其正)」는 식이었다. ▼ 오랜 고민과 「대안론」 ▼ 그런 그가 운명이건 사명이건 마침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은밀한 야심과 그를 가만 두지 않은 정치환경 탓이었을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경륜이 높고 사고에 균형을 갖춘 지도자로 자부하면서 뜻을 펴기 위해서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게다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늘 대망의 제삼후보로 거론됐었다. 야심 없는 사람도 야심의 불을 지필 만한 환경이었다. 현실정치의 추악함도 조씨에게는 오히려 기회였을 것이다. 조씨는 『현재 집권하겠다는 정치세력들은 위기를 돌파할 능력이 없다. 여야 구분없이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지역을 분할해서 사익만 꾀하고 있다』고 정치인들을 비난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어서 번민 끝에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대안론」의 근거이자 일정한 여론이 그에게 지속적 기대를 보내는 우리 정치의 「틈새」인 것도 분명하다. 확실히 조씨는 인품 학식 도덕성 청렴성 등에서 대안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하다. 연령으로는 3김씨와 동시대인물이지만 3김청산이라는 일부 여론의 희망에 부합하는 참신성과 중량감을 갖춘 것으로도 보인다. 그의 야당성향은 그를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여야가 일제히 조씨의 「경쟁력」에 두려움을 보이는 까닭도 그런 점에서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가마 타고」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학자 조순」에게 현실정치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짐일 것이다. 자신을 민선 서울시장으로 만들어준 야권세력을 「배신」했다는 정치적 신의(信義)의 문제나 서울시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시정공백을 초래하면서 사욕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부터가 대응하기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더욱 극복하기 힘든 도전은 조씨의 정치적 자원과 능력의 한계일지 모른다. 몇번의 길지 않은 공직생활에서 조씨는 인상적인 정치력과 행정력을 실증해 보이지 못했다. 그는 그 실패를 환경과 제도 탓으로 돌렸으나 설득력 있는 변명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지금 조씨는 「국민후보」가 아니라 「민주당후보」로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다. 「조순 변수」가 상황을 리드하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상황에 이끌려다니는 종속변수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은 것이다. ▼ 주도할까 종속될까 ▼ 그가 목표로 삼는 진정한 종착역이 어디일지 그의 「계산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여론은 한낱 허망한 거품일 수도 있다. 아니할 말로 「한방에 날려버리겠다」는 정치권의 「공갈」을 귓가로 흘려 들을 수도 없다. 인물난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가 아껴야 할 원로 지식인 중 한사람인 「조순박사」가 혹 세속적 야심에 못이겨 스스로 매도해 마지 않는 지역주의와 야합과 패거리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라도 입는다면 슬픈 일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장기(長技)가 있는 법이다. 「조순 변수」는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 꼭 정치뿐인지를 곰곰이 생각케 하는 기회를 준다. 참 지식인은 스스로 이름을 지킬 줄 아는 지식인일 터이니까.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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