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18일, 심판의 날

  • 입력 1997년 12월 16일 20시 38분


투표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후보들로서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인기와 여론이 밤사이에 요동치듯 바뀌고 선두주자조차 살얼음을 밟는 듯한 판세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불안 초조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후보마다 맞닥뜨린 악재(惡材)도 많았다.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려는 비열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도 난무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온국민의 마음은 꽁꽁 얼어 붙었지만 선거판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 새 세기 열어야할 대통령 ▼ 그 생사를 건 격전도 오늘로 끝이다. 내일밤 자정께부터는 새 대통령이 겹겹이 두른 장막을 하나하나 걷어올리며 서서히 무대 앞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희망찬 새 세기를 열어야 할 대통령이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백년, 새로운 천년의 문을 자기 손으로 열어제칠 지도자, 그 백년만에, 천년만에 한번 돌아오는 행운을 손아귀에 쥐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새 대통령에게는 축배를 들 여유가 없다. 그가 안을 행운은 고난과 시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새 대통령이 전임자로부터 물려 받을 한국호(韓國號)는 지금 침몰 직전이다. 그는 난파선의 키를 IMF라는 항해사에게 내맡긴채 항로도 항속도 고장수리도 심지어 급유의 양과 시기도 항해사와 협의해서 결정하는 민망한 처지에 서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불안에 떠는 일부 승객과 화물을 바다에 내던지는 비정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항해사에게는 연신 미소를 보내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새 대통령은 그보다 더한 수모를 감수하면서라도 우선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해놓고 봐야 한다. 말 그대로 장작더미에 누워 곰쓸개를 핥는 지도자가 돼야 하고, 이 고난의 시대를 함께 헤쳐나갈 국민을 눈물로 설득해 나라 살리기에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IMF의 제약 아래에서나마 21세기에 나라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이를 성취할 거시적인 발전전략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사회세력의 요구와 갈등을 민주적으로 통합해 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 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정권이 의미도 모른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 세계화 개방화 정보화 자율화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김영삼정권이 목표도 순위도 수순도 없이 헝클어버린 배반당한 변화와 개혁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오늘 나라를이 난국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 개발시대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청산하지 못한 데 있음을 직시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사회를일궈내야 한다. 나라의 암(癌)인 지역감정도 해소하고 국제사회를 리드하며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앞당겨야 한다. 내일은 바로 이러한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 어렵고 벅찬 책무를 가장 근사(近似)하게 수행해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다. 나라를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언덕으로 건져 올릴 지도자를 뽑는 이 세기적 선택이 또다시 지역이나 연줄 따위의 원시적 정서에 좌우된다면 우리는 92년 대통령선거의 뼈아픈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 나라의 틀 바꿀 한표를 ▼ 선택은 어렵지만 기준은 단순할 수 있다. 어차피 나라의 틀을 바꿔야 하는 시대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자격과 희망이 있음을 만방에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가 됐든 세대교체가 됐든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나라를 한순간에 거덜낸 세력을 표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세계가 우리를 자존심도 없는 국민이라고 비아냥대지 않을까 두렵다. 나라를 망친 김영삼대통령의 비극은 수구 기득권세력과 손을 맞잡은 3당 합당에서 비롯됐다. 그 전철을 되밟을 수는 없다. 지금 세계는 우리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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