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어린 천사들의 합창 ▼
리틀엔젤스 어린이들은 평양 봉화예술극장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북한 어른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고 북한 어린이들과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반갑습니다’를 합창했다. 그들의 눈에는 어른들이 50년 동안 높이 쌓아올린 이념과 체제의 벽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도 우리 땅, 북한 사람도 우리 민족이었다. 남과 북의 어린이들은 만난 지 1분만에 통일을 이뤘다.
그러나 어른들은 통일하지 못한다. 새들은 휴전선을 넘어도 사람들은 휴전선을 넘지 못한다. 들짐승은 비무장지대를 넘나들어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는 아직도 판문점을 넘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남쪽의 들풀과 북쪽의 들풀이 다를 리 없건만 남쪽 농장에서 자란 소떼는 북녘 산천의 들풀을 뜯을 수 없다.
남쪽 어른들이 작은 천사들의 순수한 속삭임에 가슴 철렁 내려앉듯 북쪽 어른들도 어린이들의 꾸밈 없는 호소를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통일을 막아서는 안된다. 당장 통일이 안된다면 사람과 편지가 남북을 오가고 남쪽과 북쪽의 물자가 제한 없이 휴전선을 넘나들게 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런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새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평화 화해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정책의 첫 걸음이다.
우리는 다 풀었다. 민간차원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제한없이 허용하고 민간기업의 대북투자 규제도 사실상 완전 철폐했다. 누구든 북한에 물자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보내고 북한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자율적 판단에 따라 수시로 무제한 투자해도 좋다고 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라면 북한 인권문제나 납북자문제조차 거론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손뼉은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통일은 남북한 어느 한쪽의 의지나 열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린이의 통일과 어른의 통일의 다른 점이다. 통일을 앞당기려면 남북이 서로 필요한 쉬운 문제부터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순서다. 많이 만나서 많이 대화하고 많이 협력하는 것이 첩경이다. 우리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우선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대북 지원문제 협의를 통해 남북의 협조망을 확대시켜 나가고자 한 선택은 그런 점에서 옳다.
문제는 북한이다. 지난번 베이징(北京) 남북차관급회담에서 북한은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문제와 비료지원문제를 병행 합의하자는 우리측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가 북한에 주겠다는 비료 20만t은 미화(美貨)로 5천만달러에 이른다. 95년 이후 올해까지 민간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옥수수 등이 전부 합쳐 3천1백여만달러어치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액수다. 같은 기간중 정부차원 대북지원은 2억7천3백여만달러어치였다. 그 많은 지원을 받아가고도 북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막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을 거저먹겠다는 북한측 자세는 한마디로 몰염치다.
▼ 北 화해-협력 성의보여야 ▼
독일통일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선(先)민족통일 후(後)국가통일’이다. 어린이의 통일은 민족통일의 원형일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반세기 동안 남북으로 흩어져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형제가 혹시 살아 있다면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도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어린이는 통일했다. 이제 어른들만 통일하면 된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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