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가 전국의 유권자 1천5백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런 정치혐오의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조사대상 유권자의 64.6%가 국회의원 정수를 2백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2백50명이 적당하다고 한 사람은 19.3%, 현행대로 2백99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9.9%에 불과했다. 이유는 뻔하다. 국회의원이란 나랏돈 축내는 존재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왜 하필 2백명인가. 99명 줄이면 나머지 2백명은 나라살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우국지사들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2백99명 가운데 2백명쯤은 그래도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무슨 객관적 근거라도 있다는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어차피 국회라는 것이 그렇고 그런 판이니 99명분 세비만이라도 아껴보자는 계산인가.
어떤 경우든 이 냉소주의에는 분명히 반성없이 지나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랏돈 축내는 존재’들을 국회로 뽑아 보낸 사람들이 다름아닌 유권자 자신들이라는 점이다.
비리사건으로 감옥 살다 사면복권으로 풀려난 사람들,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온갖 음험한 계략을 밥먹듯 일삼던 사람들, 정치판이 바뀌는 계절이면 허겁지겁 양지를 찾아 떠돌던 철새들, 그 그렇고 그런 부류의 정치인들을 돈에 눈이 멀었든 지역감정에 눈이 어두웠든 국회로 보내놓고는 선량한 국회의원들까지 싸잡아 나랏돈 축낸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바로 유권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국회의원 숫자 때문에 오늘 정치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아니다. 정치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먼저 바로서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의 우리 정치판은 더도 덜도 없는 유권자 의식의 복사판이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유권자들에게 무슨 거창한 사명감을 요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사람의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조용하고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일궈가는 바탕이다.
가령 지난 주말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김대중정권 국정파탄 및 야당파괴 대구 경북 규탄대회’를 보자. 공원을 가득 메우고 주변 건물 옥상에까지 몰려든 3만여명의 청중은 대부분 손에 태극기를 들고 ‘TK사수’ ‘TK단결’이라는 머리띠를 둘렀다는 소식이다. 플래카드와 피켓에는 ‘영남세력 죽이기가 제2건국인가’ ‘영남인물 씨말리고 누구랑 동서화합’같은 구호들이 보였다고 한다.
처지가 바뀌어 국민회의가 호남 어느 지역에서 그런 식의 집회를 가졌더라도, 또는 자민련이 충청도에서 그런 집회를 가졌더라도 양상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것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지형이다. 지역주민을 그렇게 선동하거나 선동해온 쪽은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주권의식에 투철했다면 이런 식의 정치행태가 발붙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미국 카네기재단이 용기있는 시민 18명을 ‘올해의 영웅들’로 선정했다. 지하철 권총강도와 싸우다 총상을 입은 청년, 11개월 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자동차로 뛰어든 30대 여성, 성난 황소들에게 둘러싸인 여성을 구출한 20대 청년 등이 영웅으로 선정됐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건 이들이야말로 인류공동체를 지탱하는 진짜 영웅이라는 것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영웅이란 마음이 위대한 사람이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만심 없이 대중 속에 조용히 묻혀 사는 사람, 제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히 매진하는 사람, 세론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는 사람, 옳은 것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 그래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이건 유권자건 우리 주변에 그런 영웅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정치가 하도 꽉 막히다보니 답답해서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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