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주일 동안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박지만씨의 히로뽕 복용이었다. 말한마디 나눌 상대가 없는 외로움 때문에 히로뽕에 빠져들었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절대 권력자의 아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업보」를 떠올렸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던 경호원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엄격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한창 예민한 시기에 여의었으며 하루아침에 보호막이었던 권세도 잃었다. 그의 불행이 인간적으로 이해안되는 일도 아니지만,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환경탓에 그리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온당치 못해 보인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국민들로부터 결코 사랑받지 못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데 있었다. 사랑은 커녕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많이 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 아버지가 지은 업이 아들에게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지난 가을 취재차 방문했던 러시아의 소도시에서 나는 한국인 목사 밑에서 운전기사로 있는 러시아인을 만났다. 일자리가 부족한 곳이기 때문에 후한 대우를 받고 일하는 그는 거기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알고보니 그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한국에서 산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일자리를 얻자 「옛날에 한국인들에게 못할 짓 하지 않고 잘 지낸 덕을 네가 보나보다」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는게 그의 말이었다. 인연 인과응보와 같은 불교적 용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수 없어도 어쨌든 러시아노인의 그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요즘 한창 「환생 신드롬」이 유행이지만 나는 환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자식, 내 손자가 나 죽은 뒤에도 이 땅에서 살면서 더러는 나를 기억하리라는 사실은 틀림없이 믿는다.
만일 지금 내가 행하는 일이, 내가 만나는 사람이, 혹은 내가 지은 인연과 업이 내 핏줄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결코 오늘 하루만 살고마는 사람처럼 굴지는 못할 것같다. 중국동포를 상대로 사기치는 사람을 비롯, 매일같이 신문에 등장하는 온갖 비리 부정 부패의 주인공들이 「자식키우는 사람은 남에게 함부로 못하는 법」이라는 옛말을 알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김 순 덕 <문화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