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개념중에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외국학자들 말로는 EQ 또는 감성지수라고 하는 모양인데 EQ관련 책부터 학습지 심지어 EQ를 높이는 학생가구에 이르기까지 EQ관련산업도 봇물을 이룰 조짐이다.
EQ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EQ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력과 공감,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한다. 곧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알고 남의 기분도 눈치로 읽을줄 알며 일이 되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EQ란 얘기니 우리가 익히 알고 써오던 마음 또는 눈치로 바꿔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기실 지금까지 우리 문화권에서 마음이란 억제하고 다스려야할 대상이었지 드러내고 따라야할 나침반은 아니었다. 눈치가 빨라야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지만 눈칫밥 먹고 큰 간사한 사람같다는 부정적 의미도 만만치 않다.
눈치와 반비례되는 논리와 사고력의 빈곤은 여자에게는 『그러니까 여자지…』라는 퉁이나 듣게 만드는 결점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남자가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남자답지 못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태껏 비과학적으로 간주됐던 그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논리나 지성보다 확실할 수 있으며 IQ보다 EQ높은 사람이 성공은 물론 행복까지 얻을 수 있는데다 21세기에는 지성아닌 감성이 우대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들 하니 「눈치빠른 사람 만만세」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삶의 질이라는 것도 첨단과학의 발달로 우리 몸이 훨씬 편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게다. 나같으면 잘나가는 「첨단 택시」를 타는 것보다 추운 날 간신히 택시를 잡아탔을 때 『춥죠. 히터 틀었으니 금방 따뜻해집니다. 어디로 가실까요』하고 말한마디 해주는 기사를 만났을 때 훨씬 행복할게 분명하다.
다만 한가지, 어른들이 자기 감성을 발휘할 생각은 않고 아이들 조기 EQ교육 궁리만 하고 있다가 급기야 수능시험 한 종목으로 EQ측정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 순 덕<문화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