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세원/애국심과 국수주의

  • 입력 1998년 5월 2일 20시 42분


“태극기와 함께 다시 뛰자.” 광복절은 아직 멀었는데 태극기 열풍이 분다. 태극기가 부착된 책가방에 태극기를 내건 광고, 매장을 태극마크로 장식한 슈퍼마켓, 태극기가 그려진 포스터를 붙인 패스트푸드점에 아예 ‘815’란 이름의 콜라까지 나왔다.

금융권에서도 중소기업사랑통장 경제회생 수출지원통장 실직자후원기금통장 등 나라사랑, 이웃사랑을 내건 금융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소비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상품과 광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숱한 외침을 받았고 한때 외세에 국권을 빼앗긴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애국심은 순위로 보자면 첫째가는 덕목이다. 더욱이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감대가 절실하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결의대회와 서명대회로 결집되기 시작한 국민들의 애국심은 장롱속의 금붙이를 내다 파는 금모으기운동으로 불붙더니 직배영화 ‘타이타닉’안보기운동을 거쳐 국산품 애용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이러한 집단운동이 심리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국수주의로 흐를 위험도 높다. 이미 미국자동차업계는 한국이 자동차 수출은 물밀듯이 하면서 외제차 수입에는 적대감을 보인다고 목청높여 비난하고 있다. 관계당국이 소비자단체와 일선 학교에 우리 물건 사쓰기 운동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거미줄 같은 교환망으로 얽힌 세계화시대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모든 것을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가르는 국수주의의 이분법이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해외여행과 호화 외제품쇼핑에 앞장서다가 어느날 갑자기 애국자로 돌아서고, 급한 불을 끄고 나선 다시 흥청망청하는 우리의 건망증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김세원<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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