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순덕/아줌마 뛰어넘기

  • 입력 1998년 7월 3일 19시 26분


우리나라엔 남자와 여자 말고도 또하나의 성(性)이 산다. 바로 ‘아줌마’다. 외국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아줌마 차별은 틀림없이 유별날거다. 지하철 일렬좌석도 아줌마가 앉으면 ‘5인분’, 아줌마가 일어서면 ‘7인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아줌마를 아줌마로 부르지 뭐라고 하겠느냐”는 이도 있겠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말이 단순히 ‘결혼한(또는 나이든) 여자’가 아니라 제삼의 열등집단으로 간주된다는 데 있다. “아줌마가…”소리를 일주일에 한번씩 한달만 듣고 나면 더이상 뭔가를 해보려는 어떤 노력도 포기하게 될 만큼, 아줌마란 말에는 강력한 마력이 있다.

나도 그랬다. 20년 가까이 콘택트렌즈를 끼다 지쳐 시력교정수술을 받겠다고 하자 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아줌마가 무슨…”했다.

포기하고 살다가 지금 내 위치에서 내 힘으로 내 인생을 바꿀 만한 거의 유일한 일이 눈수술이라는 확신을 가졌을때 쯤, 나는 기막힌 연때를 만나 심봉사 눈뜨듯 개안을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야, 정말 세상은 바라는 만큼 되는구나.

누군가 내게 말해준 ‘공식’이 생각났다. VI〓R.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Vivid) 상상하면(Imagination) 결국은 이뤄진다(Reality)는 것이다. 그러고나니 “아줌마가 무슨…”이라는 주술(呪術)때문에 쪼끔씩만 바라고, 펑퍼짐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무지하게 억울했다.

따져보면 어디 ‘아줌마족(族)’뿐이랴. “공부도 못하는 녀석이…” “한국사람이…”같은 턱없는 선입견과 고정관념때문에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남들이 암만 아줌마라 불러도 나는 이제 반짝반짝 잘보이는 눈으로 더 많은 것을 생생하게 그려볼 터이다. 그리고 언제 이루어질지 두고 볼거다. 공부못하는 사람, IMF에 고통받는 한국사람 모두 다 그랬으면 좋겠다.

김순덕<문화부>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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